엄마를 사랑했지만, 안 미워할 수 없었다

가장 가까웠기에, 가장 아프게 했던 사이

by 하온
“넌 내게 남편이자, 친구이자, 자식이야.”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일 때면

그 말을 습관처럼 꺼냈다.

애정의 표현 같았지만,

사실은 감정의 입막음이었다.

엄마의 외로움일까,

함께 무너지고 싶었던 걸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그 모든 걸 받아내야 했던 사람이

늘 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딸이고 싶었다.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엄마에게는

그저 딸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에게 나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어떤 날은

정말로 엄마를 밀어내고 싶었다.

말없이 무게를 짊어지는 척하면서도

나는 내내

아빠를 데려간 죄인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엄마마저

내게서 등을 돌리면

나는 이 세상에

정말 혼자 남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엄마가 금전적으로 힘들다고 하면

나는 가진 걸 다 내어주었다.

그게 잘못인 줄도 몰랐다.

그저 ‘괜찮은 딸’로 남고 싶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기에

취업만큼은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엄마는 내 직업을

“전문직이에요”라고 말하며

그 말 하나로

나를 자랑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져’ 갔다.

그게 내 몫이고

내가 짊어져야 할 역할이라 믿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건넨 말들이

언젠가부터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는 것도

모른 채.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 번쯤은

나도 힘들다고 말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늘 같았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죽고 싶은 건 나야.”

그 말들이

내 입을 닫게 만들었다.

한 번 용기 내어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니네 아빠가 있었으면
네가 나한테 그랬겠어?”

엄마는 종종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고,

엄마는 그 상처의 원인을 결국 내 안에서 찾았다.

나는 언제나 감정을 삼켜야만 했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했다.


지갑도, 마음도 비어간다


지갑도, 마음도 비어간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조금씩, 조용히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다 내어준 사랑,
말로 다하지 못한 죄책감,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한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점점 무겁게 쌓여갔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다.
엄마가 있었으니까.


사실, 그때 나는 없었다.
엄마가 힘들다 하면
내 숨 쉴 틈도, 내 이름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다.

은행 빚도, 카드론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 존재의 이유조차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것 하나로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없는 세상이 너무 두려워
나를 밀어낸 채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가장 깊이 상처를 냈고,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밀어냈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
늘 내가 먼저 입을 닫았다.

그 조용한 시간들이
결국 우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키려 했던 마음들이
어쩌면 서로를
조금씩,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땐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엄마 사람


언제부턴가

엄마는 내게

그저 ‘엄마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역할과 책임,

상처와 부담을 쥔 채

서로가 서로에게

모순처럼 얽혀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게 되었고,

미워하면서도

결국 미워하지 못했다.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늘 엑스트라처럼 살아온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선 주연이 되고 싶음을 갈망했다.


언젠가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감정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마음을 붙잡고 있다.

아직도, 엄마는 모른다.

내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그렇다고 알리고 싶지도 않다.

나는 괜찮아야 하니까.


아직 다 비워내지 못한 말들이, 이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작가의 노트⟫


이 글은

사랑이 상처가 되는 방식,

가족이라는 이름이

때론 감정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는 걸

조용히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당신도

말하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고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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