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고 싶지만, 이해받고 싶지 않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겠지.
그걸 이제야,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처음 자식을 키워보고,
처음 남편을 잃고,
처음으로 이 세상에
‘자식’이라는 짐을 안고 혼자 남겨졌던 사람.
나는 왜 그걸, 그땐 몰랐을까.
내 아픔을 봐주기만을 바랐다.
엄마는 늘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 보여서, 나는 자꾸 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나만 봐주길 바랐다.
엄마도,
무너지고 있었을 거라는 걸.
무너지고 싶었을 거라는 걸.
나는 내 아픔에만 빠져 있었고,
엄마는 엄마대로
말 못할 감정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
우린 그렇게,
각자의 슬픔을 따로 안고 있었다.
사실, 나는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었다.
내 의지로 태어난 아이에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
그게 너무 두려웠다.
지금도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의 변화가 많다.
‘나는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겪어봤으니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마음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엄마는 아직도
내 결혼을 반대한다.
사주에 넌 늦게 가야 한다더라.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
정이 많고, 잔정에 약하다.
결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이런 말들, 익숙하다.
처음엔 그 말들이
나를, 내 삶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려서
매번 서러웠고, 오히려 반박하려 들었다.
근데 지금은
그 말들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이
조금은 보인다.
엄마는 또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운 건 아닐까.
아빠 없는 세상에서 딸까지 멀어지면,
그건 정말 완전히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 테니까.
그래서 엄마는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붙잡고 싶은 것 같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나 이렇게 사랑받고 있어.
나 이렇게 예쁨받고 있어.’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는데,
혹여 엄마 마음 한켠에
걱정과 우려가 생겨서
스스로를 더 옥죄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내가 상처받게 되진 않을까.
상처 주고 싶지 않고,
또 상처받고 싶지도 않아서.
하지만 가끔은
그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진다.
엄마의 걱정도, 충고도,
내가 왜 계속 설득하고 있어야 하지 싶은 마음도.
가끔은,
정말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까.
싶어질 때가 있다.
이해받고 싶어서 울었지만,
또 동시에
엄마가 날 다 안다고 말할 때마다
왠지 더 닫히는 마음이 있었다.
알고 싶은 마음보다,
알지 말아줘라는 마음이
더 앞설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엄마 앞에서
내 마음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덜 상처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결국엔
나는 또 상처받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건
그렇게 서로를 흔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란다.
언젠가는
엄마도 내 마음을
이해해줄 날이 오기를.
내가 선택한 사람을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수 있기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엄마가 처음이었던 엄마를
조금 더 온전히 안아줄 수 있게 되기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테니까.
무서웠을 거고,
잘하고 싶었을 거니까.
그리고 나도,
지금은 내 삶을
조금씩 선택해보려는 중이다.
좀 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치열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