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살아내는 삶
아빠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직업.
어깨 넘어로 배워오던 제도법.
그리고 유공압 책자, 꼼꼼히 적혀있던 필기.
나는 아직도 그때 아빠가 쓰던 몇자루의 필기구와
그 책자들을 버리지 못했다.
아니, 안 버리고 싶었다.
때때로 묵직한 그 바디를 바라보고, 손에 쥐고 있으면
참 이상하게도 ‘이 삶을 내가 이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아빠가 그렇게 가고 난 후,
나도 자살을 생각했다.
나 따위가 뭐라고.
나 같은 게.
무엇보다도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날 매일 무자비하게 찔러댔다.
그래서 살기싫었다.
그치만 무심결 아빠의 물건을 보고있을땐,
모든 걸 놓고, 다 포기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아빠가 말리려는 것 처럼.
그 물건들은 꼭 내가 보관해야만 할 것 같았다.
써야만 , 이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이유같지않은 이유로라도.
아빠의 빈자리에
나는 무심하게 나를 끼워 넣기 시작 했다.
아빠가 갖고싶어하던 그 직업.
학창 시절부터 간절히 바라면서도
끝내 하지 못했던 그 직업.
그래서 다른 부서에 있으면서도
슬며시, 알음알음 배웠다며 자랑하듯,
동시에 아쉬움이 스친 그 반짝이지만 포기하던 그 눈빛.
나는 그걸 해보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쉽지 않았다. 아니 그냥 어렵고 다 버거웠다.
비전공이었고, 정말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수없이 원망하고, 스스로를 자학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더 미워하면서.
면접을 볼 때마다, 선임들은 물었다.
“왜 이 직업을 선택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관심이 많아서요."
"어릴 때부터 기계 쪽에 흥미가 있었어요."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재미. 관심.
그 말 안에는 사실
엄청난 최면과 합리화, 위로가 들어 있었다.
정말 재미있었다면
그렇게 지쳐 쓰러지지 않았을 테고,
진심으로 좋아했다면
도면 한 장 한 장을 붙잡고 울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밤을 새면서 손등을 쥐어뜯으며 버텨내보진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살아야 했고,
살아내야 했고,
집에선 걱정 안 시키는 딸이어야 했고,
또 가장이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재미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인생을 ‘아빠의 선택 없이’ 이어갔다.
누구의 의지도, 신념도 없이.
삶의 주인공은 사라진 자리에서,
남겨진 빈틈을 메우듯 그렇게 살아냈다.
그게 때론 나를 살렸고,
또 어떤 날은 나를 더 망가뜨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직업을 놓지 않고 있다.
아빠가 살아보고 싶었던 세상.
나도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었던 것 같아서.
비록 아빠가
스스로 너무 힘들어서
그 시계를 멈춰버렸더라도.
나는 그 시계를 다시, 억지로라도 돌렸다.
그 시계만큼은
내가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아직도 나는 많이 서툴고,
여전히 불안정하다.
나 자신에게 핸디캡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나는 오늘도 그렇게
‘재미있는 것처럼’ 살아내고 있다.
정말 그렇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나온 10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