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를 버텨내본다는것.
아빠를 향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옅어졌다.
잊지 않겠다던 다짐도 자꾸만 희미해졌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누군가는 쉽게 말했지만, 그 말은 내게 이별을 강요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우리는, 그냥 살아지고 또 살아가고있다.
나는 분명 아빠의 영정사진속 그 얼굴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마지막으로 입관식에서 본 그 얼굴을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선명하게, 평생 간직하고 싶었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어찌 잊을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빠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사진 속 얼굴은 분명히 거기 있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낯설게 느껴졌다.
기억 속 아빠와 사진 속 아빠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눈매가 어땠더라?, 원래 저랬었나?
아빠가 어떻게 웃었었지?
잔주름이 있었던가?
이마에 힘을 줄 때 생기던 주름은 어느 쪽이었더라?
그 사소한 것들이, 조용히 사라져갔다.
생각하려 할수록 기억은 뭉개졌고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아무리 눈을 비벼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그사실이 너무 잔인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게 나와 내 동생뿐인데
내가 이렇게 쉽게 잊어가도 되는 걸까.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아빠를 잊고 지내는 게 맞는 걸까?’
‘그래도 될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깊은 구렁텅이로 끌어내렸다.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던 내가
너무 많이 원망하고 미워해서 그런 걸까?
내 이성과 마음이 다름에 스스로를 위선적으로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결국, 난 스스로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얻었다.
몇 번의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받게 되었다.
물론 약물 치료는 지금도 계속 받고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몇몇 선생님들은 내게 말했다.
“그 기억을 너무 오래 간직하면,
당신도 다음 삶을 준비하지 못하게 될 수 있어요.
다음 걸음을 위해 조금은 내려놓기도 필요하지않을까요 ?”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나에게는 또 하나의 협박처럼 들렸다.
기억을 놓게 된다면, 그 후의 내가 무너질까 봐 겁이 났다.
아니, 내가 사라질까 그게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아빠가 흐릿해지는 건
단지 잊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빠의 얼굴은 가물가물한데,
그 특유의 온기만큼은 아직도 생생했다.
걱정할 때 짓던 그 표정.
내가 이야기할 때 피식 웃던 눈가.
그건 얼굴이 아니라, 뭔가 모를 무언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잊은 게 아니라
아빠를 기억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거울을 보다가
문득 내 웃는 얼굴 안에서
아빠를 보았다.
눈꼬리의 방향, 입술의 모양, 잔잔한 미소까지.
‘아, 내가 아빠를 온전히 잊은 게 아니구나.’
‘그저, 아빠를 나에게 스며들게 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
그 말은 누군가에겐 너무 잔인할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겐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형태를 바꾸고,
기억은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아니, 아빠가 남기고 간
‘또 하루를 살아가고 버텨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빠가 사라진 후에도
그가 살아낸 방식대로
나도 살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어쩌면,
내가 아빠를 기억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절실함이자,
가장 조용하고도 좀더 단단해질 수 있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