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과 미안함, 그리고 한줄기 빛 그 즈음 어딘가.
아빠는 한 회사의 직원이었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성실히 일했지만,
단순히 회사와 집만 오가는 삶에 갇혀 있진 않았다.
내가 두 살이 되던 해,
엄마는 아빠가 너무 지쳐 보였는지
“당신도 취미 하나쯤은 가져봐”라고 권했고,
그 말 한마디로 아빠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꾸준함이 그의 장점이라 해야 할까.
그때부터 시작된 아빠의 사진 취미는
결국 마지막 떠나던 날까지도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일부가 되어 있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지역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쉬는 날이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잠을 쪼개서라도 출사에 나갔다.
우리 가족 입장에선 서운한 감정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가 담아온 세상이
우리에겐 또 다른 간접적인 경험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여긴 가본 적은 없지만, 아빠 사진으로는 본 적 있는 곳이야!”
아빠를 보내고,
그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결국 우리 두 남매 뿐이었다.
그냥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게 너무 아쉬웠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 남매를 조용히 불러 앉혀 말했다.
“아빠 유작전을 하려고 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겠지만,
엄마는 혹여 우리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두려우면서도, 조금은 설레는 눈빛을 가졌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를 다시 떠올린다는 건,
왠지 금기된 감정을 꺼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올 줄은 몰랐다.
그 말은 마치,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동시에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때 엄마의 표정에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 사람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내 아이들에게 그저 책임감 없이 떠나간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간 사람’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나는 그 눈빛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유작전 준비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사실 나와 동생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의 사진 동호회 분들,
지역 사진작가협회 회장님과 여러 임원진들이
기꺼이 한마음으로 도와주셨다.
아빠의 수많은 출품작들을 하나하나 보며
그분들은 아빠를 다시 떠올렸다.
“맞아, 정말 사진 열정 하나는 대단했지.”
“이건 ○○씨가 정말 아끼던 컷이야.”
“이 사진 찍고선 며칠을 흥분해서 이야기하셨지.”
“이 사진 찍으러 갔을 때 우리 고생 엄청했잖아요!”
사진 속 에서의 아빠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엔 아빠의 손때가 묻어 있었고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아빠가 본 세상을,
아빠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침내, 아빠의 작품들이 전시장에 걸렸다.
노을에 반사되는 윤슬.
자욱한 안개 속 광활한 산새.
고요하게 서 있는 한 노인의 뒷모습.
나는 전시장을 조용히 둘러보다가
어느 사진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말없이, 오래도록.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엄마의 지인들, 사진협회 분들, 그리고 가족들.
당시, 지역 사진작가협회 최초로
협회 이름을 걸고 유작전을 연 작가는
아빠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 자리를 만들어준 엄마가
그날따라 유난히 더 작고 외로워 보였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어쩌면 엄마는 아빠를 영영 미워하고, 원망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러지 않았다.
오직 자식인 우리둘을 위해서.
엄마는 끝까지 희생했고,
마지막까지도 외로운 결정을 했다.
그 선택은,
자식들에게 책임감 없는 아버지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 열정 넘치는 사람이었단다.
너무 미워만 하진 말아줘.”
혹여 우리가 엇나갈까 봐
매일같이 마음을 졸이고
그 누구보다 고단했을 엄마의 시간.
그 유작전은, 어쩌면
엄마가 아빠의 원을 대신 풀어주고 싶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기억은 조금씩 버겁다.
하지만 그날,
전시회가 끝나고 불이 꺼진 전시장 안.
홀로 남은 엄마가 아빠의 사진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 참 애썼다.
이제 그만 편히 가.”
나는 그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빠가 내게 남긴 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바라보던 세상의 풍경이었다.
그건 어쩌면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이 바라보던 세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