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올 그날까지.
"밝게 웃어야 했다.
그리고 괜찮다고 해야 했다.
그래야 정말로 괜찮아질 것 같았으니까."
아빠가 떠난 뒤 처음 맞는 설이었다.
그해 부터 명절은 시골이 아닌, 우리 집에서 치르게 되었다.
모두가 기다리는 명절이라지만, 그해부터 명절은 내게 그저 그랬다.
서툴지만 엄마와 나는 한 장 한 장 전을 부쳤다.
중간중간 태우기도 했지만, “아빤 이해해줄 거야~” 하고 서로 농담처럼 웃으며, 무겁기만 한 분위기를 넘겨보려 애썼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그래도 “맛있다”고 웃어줄 사람이니까.
아빠가 와서 먹을 테니까.
그건 내 아빠니까.
우리 집은 설 전날, 늘 부모님께 ‘묵은 세배’를 해왔다.
하지만 그 해부터는 그 의식을 하지 않았다.
제사상에 올릴 제기를 닦고, 다음 날 차례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진짜로 실감이 났다.
난 말없이, 참 많이 울었다.
티낼 수 없었다.
삐뚤빼뚤, 쓰기보단 그리기에 가까웠던
동생이 쓴 ‘지방’.
그걸 보며 마음 한 켠이 욱신해졌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한자를 한자스럽게 쓸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이게 뭐야, 뽀대도 안 나잖아.’
그렇게 삐걱대는 마음을 안고,
아빠 없는 첫 명절은 북적이는 소리 속에서 지나갔다.
아빠의 생일상은 평소 생일상이 아닌
제삿상 이었다.
해산물을 좋아하던 아빠를 위해
엄마는 평소 사지 않던 것들까지 다 사다 상에 올렸다.
케이크는 사러 갔다가 돌아왔다.
버터크림 케이크가 너무 싫었다.
평소엔 예뻐 보이던 그 케이크가
그날은 너무 보기 싫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직도 버터크림 케이크를 먹지 못한다.
아빠 제사를 지내는 동안, 나는 숨죽여 울었다.
웃을 수 없었다.
'그거라도 사올걸.
이게 뭐라고, 내 성질머리 때문에.
내 자존심 때문에.'
아빠의 생일상에 케이크 하나 올려주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울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 슬픔마저 죄스러웠다.
결국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래놓고선 난 마음에 남을 후회를 했다.
그리고 몇 일 뒤, 내 생일이 돌아왔다.
그날은 아빠의 첫 제삿날이기도 했다.
우리집은 아빠의 마지막 산날 기준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날은 내 음력생일 이었다.
미역국 냄새로 가득 찼을 내 생일.
아빠가 누구보다 크게 축하해주던 그날.
이젠 없다.
그리고 그날,
할머니는 말했다.
“니는 앞으로 생일에 미역국 먹으면 안 된다이~”
엄마는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나 곧 수능이잖아, 그래서 올해는 미역국 안먹을래.
그건해주라~!“
엄만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그냥 조용히 내 밥만큼은
한가득 고봉밥 이었다.
그해 생일은 미역국도, 웃음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그날만큼은 ‘괜찮은 척’조차 버거웠다.
그치만 내생에 선명한 기억중 하나이자,
가장 속절 없던 철부지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내 생일마다 꼭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
비싸서 평소엔 잘 사지 않는 한우 국거리로.
나조차 나를 대접해야 할 것 같아서.
그날의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혹시 그날 아빠가 와 있었을까 봐,
속상했을까 봐.
사실 이 기억을 꺼내는 게 쉽지 않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토록 감정이 버거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외면하면 아빠가 내 삶에 남긴 온기가
조금씩 흐려질 것만 같아서
다시 조심스레 꺼내 본다.
좀 더 성숙히 보내드리고 싶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날,
많이 미안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온마음 다해 말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