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아빠, 그리고 파파걸의 졸업식

밉지만 보고싶은 사람.

by 하온


(이 글에는 자살과 관련된 서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라면, 지금은 잠시 덮어두셔도 괜찮습니다.)



아빤 밖에 나가서 자식 자랑 한번 안하던 사람이었다.

전교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도 칭찬에 인색한 아빠였다.

그저 집에서 치킨 한마리 시켜 온가족 같이 먹었을뿐.


서울의 한 명문대 수시에 붙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

그간 딸자랑 한 번 안 하던 아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잊고싶지않았는지 배경화면을 해두었더랬다.


그게 싫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아빠가 정말 하루하루 신나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내가 공부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아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가 기뻐할, 행복해할 얼굴을 상상하며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와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걸 보여줘야 할 아빠가

어느 날, 그냥 없어졌다.

그렇게,

목표도, 이유도, 중심도 함께 사라졌다.

난 내 나침반과 지도를 잃어버렸다.


아빠가 사라지고 약 100 일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수능을 봤다.

마음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새어나왔다.

그 설움은 아팠다.

나는 시험장으로 향했다.


수능 시험날 아침,

엄마는 도시락을 전해주며 말했다.

“시험 잘 보고 와”가 아니라,

“갔다 와.”

아무 힘도, 아무 정서도 없는 말.

그 한 마디만 남긴 채 등 뒤로 사라졌다.


한 과목, 한 과목.

시험지가 나왔지만, 글이 읽히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 머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글인데, 한글이 아니었다.

그건 시험을 본 게 아니었다.

그냥 앉아 있었고,

종이 울리면 멍하니 펜을 들었다.


시험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말했다.

“왔어?. 고생했어.”

그 말 한마디에 시험도, 하루도, 모든 게 끝났다.

엄마의 지인들의 연락이 쏟아졌고,

내 시험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말했다.

“중간에 안나온게 어디야, 끝나고 와준것만으로도 고마울뿐이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시험은, 아니 그냥 내 삶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거였다.

그걸 보여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결국, 당연히 붙었어야 할 수시에서조차

모두 떨어졌다.

놀랍지도, 아깝지도 않았다.

나는 시험을 제대로 치지 않았다.

그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냥 어딘가 가야 하나, 가면 되는 건가…

그런 생각만 맴돌았다.


난 살아야할 목표와 이유를 찾아야했다.

아빠의 자살로 인해 그 목표와 이유는 한순간 사라졌다.

누군가는 말한다.

고작 그런걸로 핑계 대지말라며.

그치만 내겐 모든 내 처음을 같이 한 아빠였고, 어쩜 아직도 아빠의 냄새를 잊지못하고 살아가는

30 대 중반을 넘어서가는 난 ,

핑계가 아니라 여전히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싶다.

엄마는 그간 해온 게 아깝다며


재수라도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휩쓸려 재수생이 되었다.


그렇게, 졸업식이 다가왔다.

중3, 고3이었던 동생과 나.

그해 우리는 동시에 졸업생이 되었다.

같은 날짜가 아니었고,

다행히 엄마는 두 남매의 졸업식에 모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엄마도 내 졸업식에 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솔직히, 그건 축하라기보단 감시 같았다.

꽃다발 하나 없이, 빈손으로 와서, 사진 한장 찍어주지 않고 간 사람.

밥 한 끼를 얻어먹고 돌아갔다.

그 자리가 불편했을지, 아니면 오히려 당당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내 졸업식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땐 나보다 한살 위였던 아빠 친구 아들의 졸업식.

하필 그날 아빠가 쉬는날이라 왔다. 난 선배의 졸업식이라 참여했고, 아빤 내가 다니는 학교에 그날 처음왔다.

중학교 졸업식엔 3교대 근무로 시간이 맞지않아 못 왔다.

'그래, 그럴수있지.'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안들었으면 거짓말이다.

그치만 어쩔수없다는걸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식에

이런식으로 안 올 줄 몰랐다.

이건 섭섭함이 아니라,

원망이었다.


아빠는 결국,

우리 두 남매의 모든 졸업식을

하나도 지켜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졸업식의 짜장면을 기억하지만

난 남의 졸업식을 축하하고, 미안함을 가득담은 엄마의 눈동자 만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졸업장을 들고 감히 웃음이 나지않았다.

그저 미움과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분노도 피어올랐다.


여전히 난 내 삶의 목표가 뭐일지 생각하며 살아간다.

또, 올바르게 살아가고있는지 잘 살아가고있는지 말이다.

그치만 모르겠다.


그렇게 미운데, 왜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지만, 그 칭찬이 오늘은 참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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