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손

잊고 싶지 않은 아빠의 조각보

by 하온


(이 글에는 자살과 관련된 서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라면, 지금은 잠시 덮어두셔도 괜찮습니다.)


아빠의 오른손.

그 오른손은 참 특별했다.

네 번째 손가락은 절단 사고로 인해 접합수술을 했어야했고,

그 사고로 인해, 새끼손가락까지도 형태가 뒤틀려 있었다.

또한, 엄지손가락은 신경이 절단돼 감각이 없었다.

두 번째 손가락은 압착 사고로 피부를 이식해서 결이 울퉁불퉁했다.

그 손은, 말 그대로 남을 도우려다 다친 상처들의 기록이었다.

장갑이 말려들며 손가락이 잘려나간 것도 누군가를 도와주던 중이었고,

압착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일생을 자기 몫도 다 못 챙기면서 남을 위해 애쓴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 손이 부끄럽지 않냐고 했다.

투박해서, 흉터가 많아서, 무섭다고.

숨기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난 그때만큼은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내게 그 손은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잘생긴 손이었다.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던 손.

가장 많은 걸 주었던 손.

그리고 가장 조용히 참았던 손.

아빤 참, 열심이었던 사람이다.

삶에서도, 관계에서도, 책임 앞에서도.

늘 어떻게든 해내려 애쓴 사람.

그래서일까.

그 열심히 살았던 삶이 때때로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열심조차 버거워 보여서 짜증이 났다.

남들은 모를지라도,

나는 아빠 딸이니까 그 애씀을,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 집에서 젓가락질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아빠였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생선구이를 해주면 아무도 그 생선에 먼저 손을 대지 않았다.

아빠가 항상 생선 가시를 발라줬다.

엄마 밥 위에 하나,

내 밥 위에 하나,

동생 밥 위에 하나.

우리는 받아먹는 게 너무 익숙했다.

아빠가 생선을 만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한순간 사라진 후, 그 역할은 내가 하게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생선 접시는 내 앞으로 가져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생선 가시를 바르고 있었다.

그리고선 엄마 밥 위에 하나, 동생 밥 위에 하나.

그러다 문득, 내 밥 위에 있는 건 뼈에 붙은 작은 살들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빠가 떠올랐다.

우리 아빠도 그랬겠구나.

우리를 먹이느라 정작 본인은 좋아하던 생선을 제대로 먹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아빠는 유독 해산물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난 참 눈치 없는 딸이었고,

또 마지막까지, 잔인한 딸이었다.


엄마는 술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말 특별한 자리에서,

겨우 잔이나 채우는 정도였다.

그런 엄마가, 아빠가 떠난 후 어느 날 지인들과 가볍게 한 잔을 하고 돌아왔다.

술을 먹으면 감정이 앞서듯,

엄만 처음으로 우리 앞에서 그간 꾹꾹 눌러두던 감정을 내보였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처음으로 울었다.

아니, 표효했다고 해야 할까.

"너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정말 너무 보고 싶어."

단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울지 않던 엄마였다.

그날의 울음은 단지 그날의 하루 감정에 의해서가 아닌,

그동안 꾹꾹 눌러온 그리움이었다.

그 울음 앞에서,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것 말고는.

그동안의 엄마는 우리의 울타리였었다.

그날만큼은 엄마의 울타리가 되어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엄마도, 우리처럼 애써 버티고 있었던 거구나.


아빠가 자살 후, 우리는 그리움의 일상을 보냈다기보단, 아빠를 보낸 후 수습을 하며 보냈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했다.

20년 근속 아빠 회사.

같은 회사를 다닌 큰아빤 아빠의 유품이라며

볼펜 몇자루와 도장, 이름표 하나 가져다 주었다.

20년의 회사생활은 그리 정리되었다.

내가 알던 아빠는 영수증 하나도 코팅 하여 파일에

꼬박꼬박 기입해두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어떤걸 숨기고 싶었을까.

다시생각해도 궁금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문 속 '아빠의 빚'을 확인하고 해결하고,

엄마는 얼마 되지 않는 아빠의 퇴직금과 조금 있던 돈으로

그 모든 것을 하나둘씩 해결해 나갔다.

자살로 떠났기에 당연히 아빠의 사망보험금은 없었다.

매일 찾아오던 작은엄마,

그리고 퇴직금 들어왔냐고 확인해서,

이자까지 계산해서 보내라고 전화하는 큰엄마.

가족, 가족 하더니.

가족은 살아 있을 때만 가족이었구나 싶었다.


며칠 뒤, 아빠의 형제들이 돌아가며 우리 집에 살겠다고 했다.

걱정해주는 척, 돕겠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건 감시였을 거라 생각한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닌,

엄마의 재출발과 동생이, 형이, 오빠가 남기고 간 재산을 혹여 어찌할까에 대한 불신이었다.


우리는 울 틈도, 여유도 없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도,

아빠를 생각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사치였을지도.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정신 차리고 살아야해 !'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버티고 짐처럼 느꼇을지도 모른다 .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런 엄마의 눈물을 보고 자라,

그런 아빠의 손을 종종 떠올리며,

오늘도 밥상 위 생선 가시를 바르고 있다.

그 손을 나는 지금도 그리워하며,

오늘도 닮아가고자 한다.


"그치만 아빠,

난 당신이 아직 많이 밉다."

그리고 미워하는 이 마음을 어찌할수 없어서

더욱이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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