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별, 그날의 기억.

"아빠, 안녕.“

by 하온

(이 글에는 자살과 관련된 서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이라면, 지금은 잠시 덮어두셔도 괜찮습니다.)


아빠를 보내기 전날 아침,

새벽에 눈을 떴다.

아빠는 평소처럼 내 방문을 열고 말했다.


“일어났어? 학교 가야지.”


담백한 목소리였다. 익숙하게 다정했고, 늘 그랬듯 날 걱정하는 말투였다.


그런데 그날 나는 예민했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그냥 다 싫어. 아빠가 내 인생에 있는 게 싫어.”


그 말이, 그 문장이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뱉자마자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아빠는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어. 밥 먹고 학교 가.”


마지막일 줄 몰랐던 그날.

나는 책가방을 메고, 아무 말 없이 휙 나와버렸다.

그게 아빠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조퇴했고, 집에 돌아와 다시 폭풍처럼 쏟아냈다.


“싫어. 진짜 다 싫어.”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빠는 출근했지만, 나는 배웅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아빠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거짓말하지 마.”


그것이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 뒤로는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 엄마가 나를 깨웠다.


“아빠가.. 돌아가셨어.”


잠이 덜 깬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나섰고,

도착한 곳은 아빠의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식 내내 믿을 수 없었다.

영정 사진은 너무 멀었고, 현실은 너무 조용했다.


엄마는 나에게 상복을 입혀주고 정리해 주며 말했다.


“아빠가 주는 마지막 옷 선물인가 보다.”


그 말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슬펐다.

울지 못했고, 울 수도 없었다.


영정 앞에서 부의금이 열리고,

나는 무릎을 굽힌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무릎 펴. 그렇게 있지 마.”

“밥은 좀 먹어야지.”


그 말들은 칼 같았다.

참다못한 엄마가 말했다.


“그냥 두세요. 지금은 뭘 줘도 못 먹어요.”


어떤 감정도, 이성도 없이

우리는 그 시간을 견뎠다.


모두 잠든 새벽, 동생과 나만이 깨어 있었다.

동생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잘살자.”


위로도 다짐도 아닌,

책임을 떠안은 아이의 조용한 선언이었다.


나는 그 손을 보며 깨달았다.


‘이 집의 가장이 되었구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온 가족이 모이면, 잠자기 전 동생은

늘 가스 밸브를 확인하고 문단속을 한다.

아무도 시킨 적 없는데,

그 아이는 그렇게 겉은 어린 어른이 되었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나는 다시 학교에 갔다.

고3이었다.


친구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어! 그럼, 괜찮아.”

“정말 괜찮아.”

"야, 부모님 계실 때 잘해라 진짜!?"

그렇게 나는 계속 대답했다.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울면, 그 순간 분위기며 그들의 하루마저 온전히 망쳐버릴 것 같았고,

그건 다 내 탓이 될 거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욱 결심했다.

더 괜찮아져야겠다고.

또, 괜찮은 척 살아가는 법을 외우고 익히기로 했다.


사실 우리 가족 모두 그랬다.

엄마는 과부라는 사실을,

나와 동생은 아빠를 잃은 사실을,

우린 마치 아무 일 없는 척하며 그 시간을 지나왔다.


우리는 웃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우는 건 더 조심스러웠다.


작은 오빠를 잃은 고모를 위로했고,

작은 동생을 잃은 큰아빠를,

작은 형을 잃은 작은 아빠를 다독여야 했다.


내 슬픔은 항상 가장 마지막이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울고 싶었지만,

하루 세끼를 차려야 했다.

동생 또한, 어른들 틈에서 눈치를 보며 심부름을 했다.


그러다 그 위로의 수위가 넘어설 때쯤

내 마음속에선 그런 마음도 피어났다.

고모는 아직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남았고,

큰아빤 아직 동생들이 남았고,

작은 아빤 아직 형이 남았잖아,


엄마는, 동생 그리고 난

남편을 , 아빠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 남지 않았는데,,

그래도 슬퍼할 수 없었다.

내 탓 같았다.

때로는 “괜찮아요.”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고,

억지로 웃는 얼굴이 흔들릴 때마다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는 애써 괜찮은 척 살아냈고,

그게 우리의 생존 방식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들다”라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여전히 “괜찮아”라고 말한다.


아직도, 아빠의 장례식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아파서 스스로 기억을 덮어버린 것 같다.


그 기억을 꺼내는 게 두려우면서도,

그 기억조차 흐릿한 게 더 미안하다.


준비도, 인사도, 기억도 없이

떠나보낸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이 글 속에서 조용히 말하는 것뿐이다.


“아빠,

나는 괜찮은 척하고있어.

근데 괜찮아보려하는데 안괜찮기도 해.”


---


*(이 이야기를 조용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같은 상처를 품고 계시다면,

우리 모두, 이토록 살아내고 있다고… 그렇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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