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텃밭일지
나만의 텃밭에 무엇을 기를까 상상하니 신이 났다.
'혼자 살면 쌈보다는 샐러드를 많이 먹을 것 같으니 일단 다양한 샐러드용 채소들을 사면 좋겠다. 루꼴라랑 로메인, 케일 같은 것들... 그리고 바질 페스토도 해 먹어야 하니까 바질도 당연히 사고, 깻잎은 여기저기 요리에 넣으면 좋으니 사야지! 방울토마토나 가지 모종은 조금 더 있다 사면되고... 아! 집 베란다에서도 몇 개 심으면 좋을 테니 흙도 추가하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골라 주문한 며칠 후, 한 박스 가득 모종과 흙이 도착했다. 마침 밭에 가면 좋겠다 생각했던 딱 하루 전 날 배송이 와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종을 한가득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밭으로 향했다.
룰루랄라 기분 좋게 밭에 도착한 나는... 연속으로 난관을 맞이하게 된다.
첫 번째, 어수선한 밭의 상태... 주말농장에서는 언제나 대량으로 갈아엎고 비료까지 뿌린 후에 밭을 분양하기 때문에 깔끔한 상태라 바로 모종이나 씨앗을 심을 수 있었다. 그 경험을 생각하면서 도착한 밭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방치된 채 말라있는 식물들이 가득한 밭도 있고, 겨우내 무언가 심어 한참 자라 있는 밭도 있었다. 다급히 확인한 나의 밭은 그나마 깔끔한 편이었지만 메마른 상태라 도저히 바로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두 번째, 농기구가 없다... 밭을 확인하고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아뿔싸 항상 농기구(라고 해봤자 호미, 삽 정도이지만)가 갖추어져 있던 것에 익숙했던 나는 달랑 장갑과 모종만 챙겨 온 것이다. 다행히 뒹굴고 있는 모종삽과 큰 삽이 있어 살짝 빌려 밭을 뒤엎기 시작했다.
세 번째, 퇴비는 생각보다 무겁다... 옆에 와 계시던 분양 동지(?)께서 저기서 퇴비를 직접 챙겨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알겠다고 대답하며 그분께서 가리킨 곳을 보는데 2m 넘게 포대들이 쌓여있었다. 버려진 쓰레기 위를 밟고 올라가 겨우 끌어내려 밭까지 옮기는데 와... 힘들다.
마지막, 모종을 심을 수가 없다... 퇴비는 모종이나 씨앗을 심기 7~10일 전에 뿌려줘야 한다. 퇴비가 숙성되면서 가스가 나오는데, 작물을 바로 심을 경우 그 가스가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퇴비를 준다는 말은 오늘 모종을 심을 수 없다는 말이다. 모종에는 영양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바로 밭에 심어주는 것이 좋은데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니...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겨우내 딱딱해진 밭의 표면을 큰 삽으로 깨고, 깊게 갈아엎는다. 모종삽으로 퇴비와 기존의 흙을 섞어주다 보면 점점 흙은 탁한 회갈색에서 습기를 머금은 보기 좋은 갈색으로 바뀌어간다. 살짝 쌀쌀하게 느껴졌던 공기는 점차 몸의 열기로 데워지고 이마와 콧잔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밭에 가져갔다 고대로 들고 온 모종을 그냥 놔둘 수 없어 베란다화분으로 사용하려 했던 스티로폼에 흙을 부어 일단 빽빽하게 심어주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이제부터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텃밭 가꾸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동안 체화된 경험들 덕분에 그럭저럭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텃밭 첫날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완벽하진 않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이,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각각의 전환점에서 나름대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굴절되고 있는 내 삶의 경로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