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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릭아낙 Jun 21. 2016

진짜 그릭요거트가 생산되기까지

크레타 양치기의 하루

셰프와 필자는 크레타섬에서 3주가량 휴가 아닌 휴가를 보냈다. 크레타섬의 레팀노 지역의 한 리조트에서 여름 시즌 동안 일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셰프는 주방에서 셰프로, 필자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주일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고, 셰프가 나를 내가 셰프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그만큼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당장 아테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따뜻한 시엄마와 시아빠의 품으로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지친 몸과 마음 그리고 힘든 기억을 달래보기로 한다. 아테네로 돌아가기 전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얼마 남지 않은 기운으로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시엄마의 고향 아노야 산골마을에서 며칠간 머물렀다. 운 좋겠도 그때가 바로 부활절 주였다. 밤에는 부활절 행사에, 낮에는 아노야 산골 마을 곳곳을 파헤치고 다녔다.


성스러운 주 토요일 이른 아침,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명절이지만 양치기, 염소치기에게는 휴일을 만끽할 시간이 없다. 매일 부풀어 오르는 양과 염소의 젖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셰프의 둘째 이모 디모크라티아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다. 그중 막내아들 존(John, 그리스어로는 야니스(Γιαννης))은 1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아 양치기를 하고 있다.


셰프의 둘째 이모 막내 아들(사진 왼편)이 직원과 함께 양의 젖을 짜는 모습

양과 염소의 젖은 보통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번씩 짜게 된다. 한 번 젖을 짤 때마다 3-4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존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잠이 많은 필자와 셰프는 느지막이 오전 9시가 다 되어 존을 만나러 떠났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존은 직원과 함께 수많은 양의 젖을 짜고 있었다.


존이 소유한 양과 염소는 모두 500마리쯤 된다. 당일 아침, 필자가 본 암양은 320마리쯤 되었다. 예전에는 4명의 직원을 두었을 만큼 큰 규모였다고 한다. 갑자기 경제난이 덮치면서 한 명으로 줄었다. 셰프의 엄마 고향에서 3일간 머물며, 그리스의 경제난이 이 작은 마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9년에 처음으로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경제난으로 인해 자살을 했다. 이후로 셰프의 지인만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이 특유의 긍정적인 멘탈리티로 잘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몇몇 자기 사업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타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존과 직원이 잠시 젖기를 멈춘다. 젖을 짠 통이 꽉 차 다른 통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알리 없는 존의 양몰이 개(Herding dog)는 계속해서 양들을 모는데 집중한다. 양몰이 개가 무서운 양들은 자기 순서가 되기도 전에 먼저 나가려고 다른 양의 등을 짓밟기도 한다. 양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젖을 짜는 동안 젖 통에 실례를 하기도 하기 때문에 존은 양몰이 개에게 재촉하지 말라며 다그친다. 이에 양몰이 개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며 '낑낑' 불만을 토로한다.


양의 젖을 거의 다 짜갈 때쯤, 존이 나를 부른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 존이 가르쳐 준대로 양의 젖을 주무른다. 상대적으로 손이 작은 나는 따뜻하고 딴딴한 고무공 같은 양의 젖을 주무르기가 쉽지 않다. 존이 짤 때는 '주룩주룩' 나오던 젖이, 필자가 짜니 '칙칙' 튄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손의 크기 때문일 게야.'


이를 지켜보던 한 양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찔끔찔끔 젖을 짜내는 내가 불만인가 보다. '긴장해서 그래. 다음번엔 노련하게 짜낼 테니 두고 보라고.'

암양과 숫양, 어떤 게 구별하지? 머리에 난 뿔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다. 아직 어린 숫양이 엄마 양의 젖을 찾아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는데, 몇 주가 지나 다 자라면 아빠 무리와 함께 지낼 예정이다.


320마리의 양이 임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가는 모습

모든 양이 임무를 마쳤다. 이제 두 번째 젖을 짤 시간이 될 때까지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양 떼'가 왜 '양 떼'인지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양치기가 양을 몰면 양들은 의문도 품지 않고, 양치기가 가라는데로 이동한다.


같은 시간 존은 다 채워진 우유를 근처 우유공장으로 팔러 간다. 두 통반이 채워졌다. 그냥 우유가 아니다. 3-4시간 동안 320마리의 양의 젖을 짠 양치기의 땀과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유이다.

 

그 사이 필자와 셰프는 치즈와 요거트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향했다. 낯선들을 반기지 않는지라 처음에는 완곡히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스에서는 '인맥'이 굉장히 중요하다. 갑자기 "너 어디서 왔어?"라며 묻는다. 셰프가 "저 요하나 다이야다의 막내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니, "다이야다? 너희 엄마를 아주 잘 알지. 맘껏 사진을 찍도록 해!"라며 시엄마의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 아주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준다. 셰프가 없었다면, 요거트를 만드는 공장에 발도 못 디딜 뻔했다.


양치기와 염소치기가 모아 온 우유를 제공받은 공장은 우선 해로운 박테리아를 죽이는 과정을 거친다. 큰 통에서 92도까지 끓인다. 이후, 실온에서 42-44도로 식힌 후 요거트를 만들기 위한 건강한 박테리아를 주입한다. 그리고 45-50도에서 4-5시간가량 숙성시키면 요거트가 완성된다.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거트 용기에 담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이 공장에서는 아직 해외로 수출하는 상품은 없고,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가까운 도시 이라클리온에서만 판매를 한다고 한다. 언젠가 양우유로 만들어진 질 높은 그릭요거트를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아쉽게도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요거트는 맛볼 수 없었다. 대신, 이 곳에서 만드는 다른 제품이 있어 맛을 보았다. 바로 쌀이 들어간 푸딩(라이스 푸딩, 그리스어로 리조갈로(Ρυζογαλο)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오래전 프랑스에서 시식해본 라이스 푸딩은 맛과 식감이 좋지 않아 거부감이 들었는데, 그리스 라이스 푸딩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달달하고 고소한 우유와 통통한 쌀의 조화가 정말 일품이었다! '아..... 또 먹고 싶다.'


그릭요거트. 한 때 한국에서 그릭요거트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리스의 진짜 요거트가 유통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그리스에서 그릭요거트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스에 와서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매일 아침 소우유보다 고소한 양우유를 마시거나, 시큼한 그릭요거트에 제철 과일과 꿀을 넣어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하루를 건강하게 시작한다. 양치기의 하루가 담긴 그릭요거트, 사랑하는 한국 가족들에게도 맛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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