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가 아닌 '누림'의 미학
나가지 않을 테니 모르는 척 서둘러 지나가길 바라는 이번 겨울은,
모르는 척 지나 보낸 그 해 봄의 마음인가 보다.
누구에게나 지나 보내고 싶은 계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계 중 하나로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열아홉 살, 일흔세 번째 계절 같은 그 해 그 계절 입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기온과 나무들의 탈바꿈, 그리고 달라지는 해의 기상과 취침 시간은
아직은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만 일깨우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피부로 닿는 날씨를 피하고 창문은 닫아버리고 싶어 집니다.
더워지고 추워지는 일 같은 건 알게 모르게 넘어가 버렸으면, 하게 됩니다.
이 계절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계절임을 알았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다가올 다음 계절을 상상하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다음조차 생각하기도 어려운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이번 여름만 지나면, 하고 눈을 감고 버텨보아도 겨울쯤엔
다시 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쩌면 계절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시작되기 전부터 기대하는 봄바람이나 가을비가 아닌,
그저 자연스레 달라진 공기에 피부를 닿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둘러 기대한다고 오는 것 또한 아니기에 그저 최대한 느끼지 않고
지나치려 한 적이 이제는 몇 번이나 있을까요.
오늘은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답지 않은 폭설로 하루 종일 울리는 안전안내문자만이
아직 구경도 못한 그 풍경을 상상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겨울의 추위는 그냥 모르는 채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넘겨 보내려던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간 생략 되어버린 몇 개의 계절들을 생각하니
내일은 눈을 밟으러 나가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 올해의 첫눈을 밟으러 나갑니다.
아마도 스물네 살의 아흔여섯 번째 계절은
아주 조금 덜 지나 보내고 싶은 계절인가 봅니다.
누구에게나 지나 보내고 싶은 계절이 있습니다.
지나 보내고 싶은 마음과 닮아 있는 그 계절은
자기만의 아름다움도 모르는 채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런 계절입니다.
사계의 행복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기와 우기 뿐이 남지 않을 테니까요.
내일은 다들 눈을 밟아 봅시다.
2025.12.04 일기
창밖을 쳐다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첫눈이 왔기 때문이다.
(중략)
조금 더 포근한 이불에 파고들 뿐이다. 지금 이렇게 쳐다볼 수가 없어 외면하는 첫눈은 아마도, 고3 때 외면한 벚꽃과 같은 종류일지도 모른다. 나가지 않을 테니 모르는 척 서둘러 지나가길 바라는 이번 겨울은, 모르는 척 지나 보낸 그 해 봄의 마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