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취업 뽀개기 1
취준생이던 당시의 내가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졸업 예정이었던 대학교의 이름과 내 대학 생활을 소수점까지 수치화한 학점(평균 평점이 4점에 아주 약간 못 미치는 엄청나게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성적이었다), 그리고 토익 점수(한두 문제를 더 맞히지 못해서 900점을 넘기지 못했다)와 고등학생 때 취득했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정도가 전부였다. 소위 말하는 ‘스펙’으로 불릴 수 있는 요소는 이것이 다였고, 나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내 나름의 노력을 여기다 덧붙여 그럴듯하게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한 편의 ‘자소설’이었다. 때때로 너무 많은 빈칸이 보인다 싶으면 초등학생 때 따 놓았던 워드프로세서 1급을 적어 넣기도 했다. 영어 말하기 시험이 보편화되기 전이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나는 편집자를 꿈꾸면서도 실상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겁도 없이 용감했었구나 싶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나에게는 편집자의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통로가 너무나도 절실했다. 인터넷을 통해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해 보았으나, 검색 능력이 많이 부족했던 탓인지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답답한 마음에 관심이 가던 출판사에 인턴을 뽑으실 생각이 없는지 직접 문의까지 했었다. 물론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유일하게 발견한 것이 바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청년 인턴제였다. 출판사로의 취직을 고려하는 학생과, 인턴을 받고자 희망하는 출판사를 연결해 주는 제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혹시나 싶어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할 무렵 청년 인턴제를 신청해 놓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뒤 해당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지 생각만큼 빨리 자리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다른 출판사의 인턴으로 이미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내가 인턴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제도를 통해 출판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자료를 찾아보니, 청년 인턴제는 ‘2017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기관과 제도의 명칭이 지금과는 달랐던 듯싶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출판사에 취업하고 나서야 편집자 선배나 작가님 들을 통해 예비 출판인을 위한 교육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와 ‘서울북인스티튜트(Seoul Book Institute, SBI)’가 있다.*
신촌에 있는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는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예비 출판인을 위한 대표적인 강좌로는 ‘한겨레 출판편집학교’가 있는데, 살펴보니 벌써 50기를 모집하고 있었다. 총 140여 시간의 수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출판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듯 보였다. 다만 100만 원이 넘는 수강료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북인스티튜트의 경우에도 ‘신규인력양성과정’을 개설하여 출판편집자, 출판마케터, 출판디자인 세 분야의 수강생을 키워 내고 있다. 올해 초 13기를 모집했으며, 필기 및 면접을 통해 수강생을 선별한다. 수강료는 ‘무료’인 듯 보인다.
* 두 기관에서는 예비 출판인뿐만 아니라,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는 재직자를 위한 강좌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나 역시 ‘교정교열’에 대한 부족함을 빨리 극복하고자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 등록한 적이 있었다. 비록 잦은 야근 때문에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첫 시간 이후에 환불했지만. 참고로 특정 강좌에 따라 ‘국비지원환급’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회사와 교육기관 모두에 잘 알아본 다음 수강하면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혹은 취준 기간이 더 길어졌더라면 나는 분명 이 중 무엇인가를 수강하고자 노력했을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편집자가 실제로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수강해 본 적이 없어 장단점을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출판계의 경우 별다른 신입 교육 없이 바로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물론 출판사마다 업무 진행 방식은 상이하다.
그리고 같은 계통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미래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일 듯싶다. 수업을 해 주시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분들이야말로 출판 경험이 풍부한, 현직에서 뵙게 될 미래의 선배님이시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분들께 수업 내‧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혹여 이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내가 편집자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 들어도 괜찮다. 덕분에 미리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위와 같은 장기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고 편집자의 업무를 개략적으로 파악하게 해 주는 책도 있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이 그것인데, 이 책은 대부분의 편집자들이 한 권쯤 소지하고 있는 일종의 ‘바이블’이다. 제1부부터 제3부까지는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 편집자가 교정교열을 볼 때 필요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자칫 틀리기 쉬운 띄어쓰기 용례 등 유용한 정보가 많이 담겨 있어, 편집자로 일할 때 곁에 두고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이다.
예비 출판인이라면 제5부 ‘편집자가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 부분을 가볍게 훑어보길 권한다. 이를 통해 세네카(책등), 도비라(약표제), 하시라(쪽표제)와 같이 출판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익힐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편집자가 되는 바람에, 유난히 주눅 들고 당황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지금은 2017년 판이 출간되어 있는데, 가격은 몇 년째 6천 원을 유지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출판업이 일본을 통해 발전되면서 출판 용어의 대다수가 일본어이다. 이를 우리말로 순화하여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식 표현이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 M사의 경우에는 1차, 2차 면접을 보기 전 필기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문제가 하나 있다. 판권지, 목차, 머리말, 속표지 등의 명칭이 나열되어 있고, 책의 구성 순서에 따라 이를 배열하라고 한 것이다. 머리가 띵했다. 내 평생 마주했던 모든 시험 문제 중에 가장 막막한 것이었다. 그때 경력자가 신입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나는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만 서 있었지,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책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편집자가 되기로 진작부터 마음먹었으면서도 말이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편집자의 시선으로 책을 바라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몰랐다. 이 책을 보면 적어도 그러한 막막함을, 이질감을 아주 조금은 줄일 수 있다.
*** 그 외에도 한문을 독해하는 문제, 영어로 된 해외 명작의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문제 등이 다양하게 출제되었다. 아직도 이러한 필기시험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평생 가장 어려웠던 시험이었지만, 가장 재미있는 시험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떨어졌지만 말이다.
분량이 넘친 관계로, 부득이하게 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뒤의 내용은 주말에 이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