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취업 뽀개기 2
이전 글에서 출판사 취업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면, 여기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자신할 수 없지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 생각한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 2013년에 출간된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서툴러서 상처밖에 줄 수 없었던 자신의 20대에 사과를 건네고 있다. 평소 이런 류의 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만큼은 유일하게 내 책장 첫 번째 줄에 꽂혀 있다.
1. 인터넷 서점을 통해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파악하라.
출판사는 책을 팔아서 수익을 내야 하는 곳이다. 베스트셀러가 책의 전부는 아니지만, 예비 출판인이라면 어떠한 책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팔리는 책’이 나와야만 그다음 책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新刊)의 홍수 속에서 모든 책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때 인터넷 서점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잘 정돈된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통해 전체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각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어떤 작가가 지금 ‘핫’한지, 어떤 출판사가 특정 분야를 이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새로 나온 책은 물론이고 베스트셀러로 분류되지 못한 책까지 둘러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편집자가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담당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 독자로서는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분야라 할지라도, 편집자로서는 대략적인 양상을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수시로 인터넷 서점을 들락날락하면서 책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게 좋다. 출판 시장의 ‘트렌드’를 나만의 시선으로 읽어 내어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 만약 자신의 취향이 너무나도 확고하다면, 애초에 그 분야의 책을 중점적으로 출간하는 출판사에 지원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을 듯싶다. 그렇다면 해당 분야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관련 출판사의 구인/구직 공고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하겠다.
참고로 각각의 인터넷 서점마다 이용자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의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여력이 된다면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 크게 네 군데의 인터넷 서점을 비교‧대조해 보면 좋다. 이 업무는 첫 출판사에 다녔을 당시, 내가 매일같이 출근 직후에 수행한 일이었다.
2. 분석 결과를 ‘원 페이퍼’로 작성하라.
여건이 된다면 1에서 파악한 내용을 짧은 글로 작성해 보자.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을 한 쪽짜리 분량으로 정리해 놓으면, 쉬이 증발될 수 있는 내용이 나의 자산으로 공고하게 남는다. 출판사 면접에 대비하는 용도로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편집자로 일하게 되었을 때에도 좋은 참고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이 방법은 출판계에 종사하고 계시던 친척 분께서 편집자를 꿈꾸던 대학생 시절의 나에게 내 주신 과제였다. 나는 매주 인터넷 서점의 분야 하나씩을 선정하여, 각 분야별 베스트셀러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원 페이퍼로 요약했었다. 시간이 흘러 작성했던 원 페이퍼를 모두 다 모아 보면 꽤 그럴 듯한 결과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3. 오프라인 서점을 자주 방문하라.
그렇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온라인상으로 책을 살펴보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책은 표지의 색감이나 종이의 질감 등등 온갖 감각적인 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금정연 서평가의 ⟨쳐다보기, 걷기⟩라는 글에 이런 내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해 주는 구절이 등장한다. 서울특별시에서 발행한 《책방산책 서울》에 실려 있는 이 에세이에서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인터넷 서점에는 거의 모든 책이 있지만 그것은 아무 냄새도 없고 두께를 가늠할 수도 없는 납작한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찾던 책으로 곧바로 달려갈 수 있지만 만질 수도, 고개를 돌려 주위의 책들을 둘러보거나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닐 수도 없다.
따라서 시간이 되는 대로 오프라인 서점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당신은 아마도 제목에 공감해서, 작가에 끌려서, 표지에 꽂혀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어떤 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책의 내용을 훑어보고, 계속해서 읽고 싶은지 아닌지 가늠할 것이다. 그 책을 두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면, 기어이 그 책이 눈에 밟힌다면 과감하게 구입하자. 물론 자신의 지갑 사정을 잘 고려해야 할 것이다.
4. 나만의 책 취향을 파악하라.
그렇게 구입한 책을 집에 와서 읽다 보면 예상보다 더 내 마음에 드는 경우도 있지만, 돈이 아깝게 느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별로였던 책이 늘어나게 되어도 슬퍼하지 말자. 이러한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내 취향을 알려 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내가 떨어졌던 M사의 면접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1차 면접에서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출판사에서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이러한 질문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초짜였다. 심지어 취업 준비에 매진한다는 핑계로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한 터라, 두세 달 전에 읽었던 책의 제목까지 끌어와 어찌어찌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세 명의 면접관 중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 베스트셀러 위주로만 읽으시는구나?”
그때는 왜인지도 모른 채 그저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 말은 나만의 독서 취향, 그러니까 ‘독서 주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저 다수의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책을 많이 읽어 왔을 뿐이었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시장 조사라는 명목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오프라인 서점에 많이 다니게 되면서야, 지금과 같은 내 책장의 모습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나는 책장의 첫 번째 줄에 ‘내 마음속 베스트셀러’라는 스티커를 붙여 놓았는데, 여기에는 한 시절을 풍미했던 베스트셀러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책도 여러 권 꽂혀 있다. 취준생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책들이다. 오로지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컬렉션’인 것이다. 최근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박사 역시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서점에서 길을 잃고, 자기가 서점에서 수많은 실패… 아, 이 책 좋다고 했는데 이거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주로 이쪽에 있구나, 뭐 이런 분야구나, 이 사람이구나를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독서라는 거예요.
책장에 자기만의 베스트셀러를 촘촘히 채워 나가 보자. 거기에 위치한 책들은 까다로운 내 취향을 뚫고 선별된 귀한 자산이다. 여기에 놓이는 책이 한 권씩 늘어날수록 나라는 사람의 독서 스타일이 확립된다. 그리고 이는 곧 해당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편집자들에 비해 원고를 읽어 내는 감각, 작가를 알아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집자에게 ‘자기만의 독서’가 절실한 이유이다.
5.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고민하라.
4를 바탕으로, 내가 편집자가 된다면 어떤 책을 기획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편집자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이미 계약된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는 일 외에도, ‘기획자’로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많다. 요즘의 독자들은 이러이러한 책에 관심이 있으니 어떤 저자에게 어떤 원고를 의뢰하면 시장성이 있을 것 같다는 고민이 항상 필요하다는 뜻이다. 출판 시장이 요구하는, 다시 말해 독자들이 원하는 책과 내 취향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출판계를 떠나 있다. 대단한 경력으로 편집자 생활을 마감하지도 못한 내가 이런저런 잡설을 늘어놓은 것은,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목말랐던 취준생 시절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지금도 무수히 존재하지 않을까 싶어 때때로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게 누군가는 편집자 생활을 멋지게 해낼 수도 있으므로, 이미 다 알려진 내용일지라도 이렇게 끄적여 두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이라는 말을 쓴다. 나는 사람과 회사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연이 다가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
만약 최종적으로 합격했다면 이 취업난을 뚫은 나를 치켜세우며 마음껏 ‘자뻑’하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회사와 나는 인연이 아니라고, 더 좋은 회사를 다니라는 신의 계시라며 ‘합리화’해야만 한다. 어떤 회사도 내 가치를 진정으로 재단할 수 없다. 그 어떤 회사도 나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내가 나를 믿어 주어야 다음이 있다.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온 나는 이렇게 되도 안 한 응원만 한아름 건넬 뿐이다.
부디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