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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Feb 06. 2020

할머니 없는 할머니댁에서 명절을

애도 일기 3

  할머니가 안 계신 첫 번째 설날이 지나갔다. 이미 지난 달의 얘기지만. 그곳에는 할머니가 없지만, 나는 다른 무슨 이름으로 그곳을 불러야 할지 몰라 여전히 '할머니댁'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 사실 나는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댁에 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그곳에 방문하는 것을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은 마음에, 근처에 있는 할머니의 산소는 찾아가면서도 할머니댁은 들르지 않고 지나친 적도 있었을 만큼.

  퇴직 후 할머니댁에 머무시며 집과 마당 등을 개조하고 정돈하신 아버지 덕에, 할머니댁은 오히려 조금 더 신식이 되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잔상은 언제나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새 시대를 맞은 할머니댁의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 내 이름을 부르며 대문 밖으로 달려 나오시던 할머니의 모습, 집에 안 계신 할머니를 찾아 바로 옆 마을회관에 찾아가 보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들과 윷놀이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 큰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너무 선명하다. 너무도 선명해서 할머니의 부재까지 또렷하게 상기시키는 바람에, 나는 할머니댁에 발을 들여놓을 자신이 없었다. 작년 추석에는 임용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핑계로 명절 기간에도 공부만 했기 때문에, 이번 설날이 되어서야 나는 할머니가 없는 명절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번 임용 시험에 너무나도 합격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할머니 산소를 찾아갈 면목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고 계셨던 와중에도 온전히 공부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한, 이렇게나 이기적인 손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나마 합격 소식을 들고 가는 것밖에 없다 싶었다. 그래서 작년의 마지막날 불합격 소식을 접하고, 나는 할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에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 산소를 찾아뵐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올해의 첫날에 나는 할머니 꿈을 꾸고 잠에서 깼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내 눈앞에서 돌아가셨다. 만약 내가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처음으로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학창 시절 백일장에 나가면 무슨 주제가 제시되건 일종의 '치트키'처럼 할머니의 이야기와 연관 지어 쓸 수 있었던 그때의 나처럼, 요즘의 나는 무엇을 보거나 읽을 때 많은 순간 그 내용을 할머니와 연관 짓고는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절로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래서 많은 경우 보던 것을 바꾸거나, 읽던 것을 멈춤으로써 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을 피해 보려 한다. 할머니 생각이 나면 그 즉시 폭발하는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님이 고향인 목포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방문하는 에피소드들은 기피 대상 1순위다. 박나래 님이 할머니댁에서 함께 잼을 만들고 조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예전 에피소드(몇 화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를 보면, 내가 할머니에게 해 드렸어야 하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그런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한 것들을, 특히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뒤늦게 깨닫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조금 더 머물다 올 걸, 그때 할머니집에서 하루 자고 올 걸, 그때 공부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랑 같이 밭일을 할 걸……. 후회되는 순간은 끝없이 증식한다.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박나래 님이 연예대상을 수상하고 나서 조부모님을 방문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방송 역시 나는 다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온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어 더할 나위 없는 효도를 하고 있는 박나래 님이 부러워서, 그리고 그 부러움만큼 부끄러움이 몰려와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나의 재능 혹은 관심사 등 모든 것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직종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연예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궁금증은 늘상 지니고 있었지만 그 세계의 일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그런데 문득 박나래 님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가, 어차피 모든 손주들이 그들을 키워 주신 조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는 것이 인생의 순리라면, 조부모님들이 보시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렇게라도 얼굴을 자주 보여 주는 연예인들이야말로 최고의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도 언제나 서울에 있는 내가 잘 먹고 잘 지내는지 그게 궁금하셨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럴 리도 없지만) 내가 연예인이 되었다 한들, 또 다른 차원의 후회를 하고 있었으리란 것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할머니께서 원치 않으실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슬퍼하고 힘들어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할머니를 추모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리지 못한 죄책감을, 뒤늦은 애도로 털어 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 적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상당 부분 진실일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어떻게 떠나 보내는 것이, 할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할머니에 대한 진정한 애도일지 내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다. 하기야 한낱 범인인 내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다만 내 뒤늦은 후회와 자책에 갇혀, 무수히 많은 의미를 남기고 가신 할머니의 삶을 그 자체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추모이자 애도가 아닌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엊그제, 문득 텔레비전을 돌리다 보게 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초등학교 바로 앞에서 40년 간 문방구를 하신 할머니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함께 문방구를 운영해 왔던 (할머니께는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가 2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문을 닫을까 고민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초등학교 학생들이 잡아 주었다는 감동적인 사연. 그리고 그 사연의 말미에 제작진은 문방구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죽음이라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한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이 세상일을 다 한 거요!
자기가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거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할 몫'을 다하고 떠나셨을까요?"라는 이어지는 질문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답한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42화 중에서


  머리가 띵했다. 나는 많은 순간 어른들보다 어린이들이 더 지혜롭고 현명하며,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정말로 그랬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감정에 매몰되어 나날이 침잠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한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래도 할머니의 삶을 언젠가 내가 기록할 것이라 다짐해 왔지만, 이제 정말이지 그 때가 온 것 같다. 그것이 국어 교사가 되어 글을 쓰며 살아가려 한 내가, 자기 몫 이상을 다 하고 가신 할머니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추모와 애도의 방법이리라. 할머니는 없지만 할머니가 있는 것과 다름 없는 할머니댁이 이제는 기록의 원천이 되어 줄 것이다.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지만, 그곳 어디에나 계시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이우분 여사, 나는 이번 설에 당신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곳에서 아픔 없이, 슬픔 없이, 기다림도 없이 새해 복만 가득 받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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