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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Mar 07. 2020

만나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며

초임 교사의 교직 일지 3

  원래대로라면 개학 첫 주를 보내고 뻗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3월의 첫 주말, 나는 만나지 못한 내 학생들의 모습을 집에서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그에 따른 위험성 때문에 전국의 유치원 및 초ㆍ중ㆍ고등학교의 개학이 3주간 연기된 까닭이다. 이건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역시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일까. 내 교직 생활의 시작이 이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교사들만 출근한 3월 2일의 광경은, 교직 생활이 오래되신 선배 선생님들께도 낯선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든 없든 약간의 설렘과 상당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낯선 분들 사이에서 인사를 하고, 낯선 공간에 나의 짐을 풀고, 낯선 분위기의 회의에 참석하고……. 온통 낯선 것 투성이였던 첫날이었다.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성함과 얼굴을 연결 지어 기억하려면 그래도 며칠을 뵙고 지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첫날 근무해서 곧바로 재택근무신청을 해야 했다. 물론 그러고도 학교에 잠깐 잠깐 들러야 할 일이 있어(일단 행정 업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에 등록하고 인증하는 그 과정 자체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어제도, 3일 전에도 잠깐씩 출근을 하고 왔지만, 혹시나 개학 무렵에 건강에 이상이 있을까 봐 (그래서 많은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께 염려를 끼칠까 봐) 그 외에는 정말이지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 개학하는 그 날이 오긴 오겠지?




  사실 나는 ‘내’ 아이들이라 부를 수 있는 학생들이 있었으면 하고 오래전부터 꿈꿔 왔기 때문에(그렇다고 그 아이들에 대한 소유욕을 지니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학교에서 담임을 맡겨 주신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뻐할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담임을 맡기지 않으셨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었다. 교직 경력이 없는 나보다 연륜이 있는 선생님들이 그 아이들의 인생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치실 것 같았고, 담임을 맡음으로 인해 따라올 많은 일들을 내가 유연하게 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 교사 임용의 대장정을 마무리하지 못한 내가, 혹여 담임을 맡음으로써 올해의 임용 시험을 예상보다도 더 준비하지 못한 채 치러가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두려운 마음을 끌어안은 채, 그런 두려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내가 맡게 될 업무를 전달받기 전까지 모순적인 감정으로 수없이 일렁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 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여성이어서인지 담임을 맡게 된다면 당연히 여학생 반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2월 중순에 남학생 반의 담임이라는 얘기를 사전에 건네 듣고 나서,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 수업 시간에 꼭 해 보고 싶었던 많은 활동들을 그대로 진행해도 될지 머릿속으로 분주히 검토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쩌면 나 역시 여학생과 남학생을 특정한 모습으로 규정해 놓고, 그런 틀 속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기도 했다. 그 반성의 끝에서 나는 어차피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축적된 데이터가 없는 신규 교사의 패기(?)로 내가 꼭 시도해 보고 싶었던 활동들은 그대로 진행해 보리라 결심한 상태다. 여학생이라서 잘 맞고, 남학생이라서 잘 맞지 않는 활동이란 없지 않을까. 그저 어떤 학생에게는 잘 맞고, 어떤 학생에게는 잘 맞지 않는 활동만이 존재하는 것일 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중학교 1학년 시기에 ‘자유학년제’*가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국어과의 경우 1학기 때에는 한 반에 (1주 기준으로) 4번 수업에 들어가지만, 2학기 때에는 주제 선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과에 해당하여 한 반에 (1주 기준으로) 3번 수업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대신 줄어든 그 한 번의 수업 시간에 국어 교사는 (국어 교과와 관련된 내용이나 교과 수업 시간에는 가르칠 수 없었던) 자신이 운영해 보고 싶었던 특색 있는 주제 선택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해당 프로그램을 선택한 아이들에게 한 주에 한 번씩, 총 17주간의 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나 역시도 17차시짜리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 뜻이다. 계획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한, 나는 아마도 아이들이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 보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책 만들기’(사실 이런 제목, 이런 프로그램 너무 흔한 걸 알지만)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려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이곳에 그 프로그램의 성패가 적나라하게 실리게 되는 날이 오겠지.

* 한 학기짜리였던  ‘자유학기제’가 일 년 과정으로 확대된 것. 아이들이 학업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꿈과 끼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지필 평가(중간 및 기말고사)를 치지 않고, 다양한 체험 활동이나 진로 지도 등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평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수행 평가나 과정 중심 평가 등을 중심으로 한 실제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나, ‘자유학년제’에서 산출된 교과 내신은 고입 전형에 반영하지 않는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조. http://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65339

   임용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책 자료집에서나 읽던 ‘자유학년제’를 직접 겪게 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솔직히 지필 평가가 없다는 생각에 후련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3월 2일에 출근하여 내 시간표를 받고 보니 내가 1학년 세 반, 3학년 두 반을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사전에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1학년 국어를 가르친다는 얘기만 들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내가 두 학년을 겹쳐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 마이 갓.

  이게 어떤 의미인고 하니, 한 주에 준비해야 하는 수업(중학교의 경우 45분짜리 수업 기준)의 개수가 총 8개로 늘어났다는 뜻이다. 국어과의 경우에는 1학년도, 3학년도 반마다 한 주에 네 번씩 국어 수업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주에 이루어질 수업을 미리 준비한다고 했을 때, 1학년 반에서 가르칠 4차시 분량의 수업과 3학년 반에서 가르칠 4차시 분량의 수업, 즉 도합 8차시 분량의 수업을 매주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ㆍ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일주일 동안 수업하는 총 시간은 같을지라도 한 반 기준으로) 한 주에 몇 번 수업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의 정도가 차이가 나는 측면이 존재한다.

  내 예상대로 1학년만 가르치게 되었다면 준비해야 할 분량이 절반으로 주는 것은 물론, (그 대신 1학년에서 국어 수업을 들어가는 반의 개수가 늘었을 것이므로) 똑같은 차시의 내용이라도 뒤늦게 수업하게 되는 반에서는 (앞에서 수업한 반의 분위기와 피드백을 토대로) 조금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수업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다 보면 전 과목을 가르치시는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무한한 존경을 표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자유학년제라서 지필 평가가 없는 중학교 1학년과, 고입을 앞두고 내신 성적에 대한 중요성이 상당한 중학교 3학년의 경우 수업 방식이나 수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각 학년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각 학년의 아이들이 요구하는 모습을 그때그때 스위치 옮기듯 보여 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잔 걱정이 많은 나는, 집에서 계속 교과서와 지도서를 들여다 보며 수업 고민을 하고 있다. 대체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했는지 뒤늦은 반성을 곁들이면서.




  교직 경력이 없어서 반에서 일어날 많은 일들에 능숙하게 대처하지도 못할 것이고,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몰라 아이들에게 더해 주고 싶은 많은 것들을 해 주지도 못할 것이며, 수업은 수업대로 열의만 넘치고 남는 게 적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내가 그럭저럭 괜찮은 담임이자 괜찮은 국어 선생님으로 올 한 해를 보낼 수 있을까. 아주 가끔은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렜다가, 많은 순간 부담감에 짓눌려 스트레스를 받다가, 때로는 내가 너무 무능한 것 같아서 눈물이 나기도 하는 요즘이다. 이런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이 개학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나면 진정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괜히 교직을 선택한 게 아니지,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새로운 선택을 잘한 것뿐이라며 진로를 바꾼 과거의 나를 칭찬해 주는 순간이 올까.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은 임용 과정을 끝끝내 헤쳐 나가겠다는 에너지를 아이들로부터 얻게 될까.

  그러기에는 교내 메신저 사용부터 어색해서 버벅거리고, 유인물 대량 복사를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도 몰라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며, 내가 궁금한 많은 것들을 어떤 선생님께 어떤 방식으로 여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신입에 불과하지만, 그렇기에 어쩐지 아이들이 너무너무 예쁠 것만 같고, 그들로 인해 내가 웃게 될 것만 같은 낭만을 지니게 된다. 사실 초임 교사에게 그러한 ‘낭만’조차 없다면 처음이라 모든 것이 험난할 교직 생활을 어떻게 버티겠냐며 (내가 존경하는 ‘김사부(사실 [김싸부]라 발음해야 입에 착착 감긴다)’**의 표현대로라면) ‘개멋’을 부리는 요즘, 김사부의 이 말만큼은 올해 내도록 잊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아무래도 나는 내 눈에 띄여 나에게로 온, 노오란 봉투에 담겨 나에게로 온 26명의 아이들이 아주 많이 궁금하고 보고 싶은가 보다.

** 임용 1차 시험에 떨어지고 힘겨워 했던 1~2월의 나에게 가장 큰 울림과 위로를 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주인공. 시즌 2가 방영 중이어서 시청하다가, 설 연휴에 시즌 1까지 몰아서 보게 될 만큼 흡입력이 있었던 드라마. 아래는 시즌 2의 마지막회에 나온 내레이션의 일부.   
사람은 믿어 주는 만큼 잘하고,
아껴 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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