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그대에게 1
그대 지금 헤어짐에 아파하고 있는가?
어쩌면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을 위로하고자 옆에 와 주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의리 있는 당신들의 우정에 감동해도 모자랄 판에, 당신은 자꾸만 울리는 친구의 핸드폰이 신경 쓰인다. 액정 화면에는 빨간색 하트표가 계속해서 깜빡이고 있다. ‘나도 얼마 전까지 그 사람과 저랬었는데…’ 생각에 잠기는 순간, 친구가 내 눈치를 보며 미안한 듯 말한다.
“나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당신은 어쩌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을 수도 있다. 정말로 그랬을 수 있다. 이별의 슬픔에 휘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평소에 가장 절친했던 ‘베프’가 아니라(무탈하게 연애 중인 베프라면 더더욱) 당신처럼 ‘솔로’인 누군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서 제일 가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분하여 아래의 ‘실연 선언문’*을 쓴, 한 대학생을 당신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 이 글은 3년간의 첫 연애가 끝난 뒤, 실제로 내가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이다. 2012년 10월 17일자 다이어리 전문을 어떠한 수정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다.
오늘로 딱 일주일이 되었다. 지난주 이 시간, 미국에서는 밤이었을 그리고 한국에서는 낮이었을 즈음에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안녕을 고했다. ‘서로’에게 안녕을 고했다고 하기에는 너의 마지막 말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도 1000일을 훌쩍 넘긴 시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던 것 같다.
헤어지자는 말만 없었던 이별 통보는 그렇게도 갑작스러웠다. 사귄 후 처음으로 시간을 가지자고 했던 한 달 전의 내 말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인가 지금도 문득문득 자책한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내뱉은 나의 말 속에는 제발 나를 잡아달라는 절박한 애원과 더 이상 속으로 삭이기는 너무나 힘들었다는 간절한 바람이 꾹꾹 담겨 있었다는 걸 너는 알았는지 모르겠다.
예상과는 다르게 더 노력해 보자고 했던 너의 말을 듣고, 미심쩍어 하면서도 조금은 들떴다는 걸, 그래서 고마웠다는 걸 너는 볼 수 없는 이곳에 혼자 끄적여 본다. 그래도 너의 남자친구가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나 보다고, 이제 네가 연애에서 갑이 되었다고, 축하(?)를 해 주었던 많은 언니들의 말에 자만해진 걸까. 나는 그간 참아 왔던 서운함과 자잘한 짜증들을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내가 너의 공익 기간을 더 오래 받아 주었다는 핑계로, 조금 더 자주 때때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는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난주, 우리는 비슷한 연락 문제로 또 한 번 다투었고 그렇게 아무런 징조도 없이 이별은 그렇게 다가왔다. 고작 -나에겐 고작이지만 너에겐 무척이나 길었을- 한 달이, 내가 우리의 연애에서 나름 ‘갑’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그리고 니가 나를 위해 참고 맞춰 줄 수 있었던 시간이었나 보다. 그랬었나 보다.
나에게 9월과 10월은 그때처럼 지금도 너무나 잔인하고 아프다. 그런데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가, 말만이라도 언제든 헤어짐이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해 와서일까, 나는 생각보다 괜찮다.
애매하게 끝난 우리 사이의 ‘만약’을 기대하기엔, 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나는 너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게 1000일이라는 시간이 준 선물이라면 선물이겠지.
나는 너와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고대하며 조금은 무섭지만 미래를 기약하며 왔던 미국의 이곳에서, 후회를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예전의 그때처럼, 너처럼 나에게도 전부인 내 동아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온몸에 철갑을 두르고 괜찮은 척 웃으며 행사에 나가야 하고, 혹시라도 길에서 마주칠 너를 보며 그때처럼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 순간순간을 노력해야 하며, 네가 돌아오면 캠퍼스를 함께 거닐 거라고 꿈꾸었던 내 지난 대학 생활을 아파해야 한다.
언제쯤 나와 너를 아는 사람들이 알게 될지 모르겠다. 아마 11월 말이면, 그 행사가 끝나면 다들 알게 될 듯싶다. 그 전까지 너의 안부를 사람들이 내게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난 여기에서 생각보다 잘 이겨 내고 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생각보다 많이 웃고 있고, 잠도 아주 잘 자고 있고 밥도 아주 잘 먹는다.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안겨 준다고 니가 읽지 말라고 했던 네이트 판을 가끔씩 보는데, 오늘은 이런 글을 보았다. “나 좀 사랑해 달라고 강요하는 나에게 지쳐 너는 떠났을 뿐이다”라고 어떤 여자가 써 두었던 글.
니가 나를 사랑했던 그 이상으로, 그것보다 훨씬 이상으로 나를 좀 사랑해 달라고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 혼자서만 맘껏 사랑하는 걸로 만족하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
그렇지만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것만큼은 알아줬음 좋겠다. 많이 힘들어하는 너를 보면서 내가 너를 웃게 해 주고 싶었고, 좋은 것들은 함께 보고 싶었고 좋은 것들을 함께하고 싶었다.
이제는 니가 좋아했던 음식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니가 좋아했던 옷 스타일이 내가 고르는 옷 스타일이라, 너는 꽤나 오랫동안 나와 함께 살아갈 것 같다.
이제는 너의 곁에서 응원을 해 줄 수도 없고 지켜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그게 나의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지지리도 놓기 힘들었던 나의 첫 사람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빨리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주었던 마음의 표현 방식이 내 기준에서의 방식이었다 해도, 너에게 맞지 않았다 해도 적어도 나는 최선을 다했고 매 순간 너를 많이 생각하고 많이 좋아했다.
이런 글도 예의가 아니란 걸 알지만, 내 마음에 대한 작별 인사는 내 맘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아직 더 날 수 있었나 보다. 이제 곧 두 자리 수로 줄어들 너의 남은 공익 근무 날짜가 미움과 원망을 키우기도 하지만 이젠 괜찮다.
오늘로 딱 두 달이 되었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시 한 번, 너와 헤어질 줄은 몰랐다.
두 달 후,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완전히 괜찮아지고 싶다.
안녕.
몇 년 뒤에 이불 속에서 얼마나 많은 ‘하이킥’을 해 댈지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궁상맞아 보일지도 모르고, 오로지 슬픔에 겨워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스물세 살의 누군가가 그려지는가? 그 와중에 길기는 또 얼마나 긴지.
그러니 그대,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머리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의 지배에서 완벽하게 풀려난 감정은 작심한 듯 이리저리 날뛸 뿐이다. 이럴 때 논리적이고 냉정한 위로는 우리의 머리까지 채 도달하지 못한다.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아도 좋다. 만나기 힘든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좋다. ‘공감’을 갈구하는 나를 나약하다고 다그치지 말자. 어찌할 바 모르고 흔들리는 나를 다독이는 게 먼저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절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오랜 사랑의 무게는 시간의 절약을 미덕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그대, 아픈 게 당연하다. 스스로의 사랑에 솔직했던 사람만이 뜨겁게 아플 수 있다. 제대로 앓은 사람만이 지나간 사랑에게도, 다가올 사랑에게도 떳떳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 그대는 쿨하지 못하기에 충분히 아름답고 고귀하다.
** 이 문장은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정확히는 3장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의 대문글에 실려 있다. 이 포인트에서 위로 받으신 분들을 위해, 마찬가지로 3장 본문에 수록되어 있는 복효근 시인의 〈목련 후기〉라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좋다.
목련 후기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