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챙기는 프리다이빙 1주년 기념일
오늘은 내가 '프리다이빙'이라는 스포츠를 처음으로 접한 지
딱 1년째 되는 날이다.
물속에서 온몸으로 나만의 기념일을 자축하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비어 있는 치아 하나만큼의 입속 공간에 기다림을 수시로 채워 넣으며, 다시 스노클을 물고 입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프리다이빙과의 1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문득 1년 전의 나를 돌이켜 본다. 어쩌면 나 같은 교사에게 아마도 상극이었을 한 학생을 만나, 어떠한 도움도 아무런 개선의 여지도 없는 상황에서 1년을 살아 내기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고자 애써야 했던 작년의 나날들을. 그리고 학생들을 떠나 보내는 것에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드디어 버텨 냈다는 서글픈 해방감만을 느꼈던, 1년간 고생 많았다는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 준 친한 동료 선생님 몇 분의 위로에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던 올해 1월의 졸업식을. 그래서 작년 한 해 주변 지인들에게 프리다이빙이라는 세계를 접한 덕분에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고 때때로 이야기하고 다녔던 내 모습을.
올해의 나는 작년의 나를 살렸던 프리다이빙조차 할 수 없지만 작년보다 훨씬 편안하고 살 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스무 살 때 상경한 이래로 한 번도 떠난 적 없던 동네를 벗어났으나 내 취향껏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이사한 집과 새로운 동네를 쉬이 애정하게 되었고, 운 좋게 이사한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걸어서도 출근할 수 있는 학교로 옮기게 되었으며, 새 학교의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며 수업 시간에 모두 다 수업을 들어 주고 필기를 한다.
물론 중간중간 여러 학생들과 관련해서 고심해야 할 문제들이 속출했지만, 상의할 수 있는 든든한 동 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내 반 네 반 할 것 없이 소위 '공동 육아'를 해 주시면서 작년과는 달리 외롭거나 처량한 느낌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함께 애써 주시려는 선배 교사들이 존재하신다는 것만으로도 교직 생활이 견딜 만하게 느껴질 수 있음을 오랜만에 다시금 깨닫고 있다.
설령 이러한 나의 느낌이 새 학교의 상황을 속속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순진한 초심자의 멋모르는 낙관이라 할지라도, 지난 3~4월에 내가 받은 위로와 용기만으로도 올해를 살아 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감히 속단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프리다이빙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프리다이빙을 놓지 못하여 결국, 다시금 맞닥뜨리게 될 '이퀄라이징'의 벽이 벌써부터 무섭다.
그렇다. 나는 작년까지도 (깊이 잠수하기 위해 꼭 습득해야 하는 기술인) 이퀄라이징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호기롭게 프리다이빙용 롱핀까지 구매하고 프리다이빙 레벨 2 과정을 수강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레벨 2 자격 획득에 실패했다. 반면 함께 강습을 들었던 나의 버디는 레벨 2 획득에 성공했다. 작년 9월의 일이었다.
무척이나 갈망했으나 나는 얻지 못한 결과를, 내가 애정하는 누군가는 획득했다. 이는 사실 기쁜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작년 9월, 그렇듯 기쁜 상황에서 나의 버디를 축하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나름 애를 썼다지만 아쉽고 실망한 마음을 온전히 감추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이 내 기분을 신경 쓰게 만들고야 말았을 것이다. 감추고 싶은 내 마음의 옹졸한 크기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수업을 해 주시는 강사 선생님이 어쩐지 나를 답답하게 보실 것만 같은 혼자만의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잘하는 것을 더 잘하고 싶어 하고 못 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레벨 2 과정의 강습 기간이 참으로 고역이었다. 분명 처음의 나는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참으로 답답했고 슬펐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싶었다.
그렇게 용인에서 이틀 연속으로 진행된 레벨 2 강습이 모두 마무리되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꽤나 울어 댔다. 내가 운동 때문에 울고 있다니, 스스로도 울면서 참으로 황당했다. 프리다이빙은 성적이나 평가와 같은 어떠한 이유 없이, 내가 자발적으로 좋아하고 잘해 내고 싶었던 인생 최초의 스포츠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이후 프리다이빙을 계속할 자신이 선뜻 들지 않았다. 이미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나게 구입했던 롱핀(사실 사이즈도 조금 커서 나보다 버디에게 더 오랜 시간 빌려주었었다)도 조금은 저렴한 가격으로 버디에게 넘겨드리고, 스노클과 마스크 등 프리다이빙을 위해 하나둘 마련했던 장비들도 가방 속에 넣어 서랍장 안에 밀어 두었다. 언제 다시 그 장비를 밖으로 끄집어 낼지는 그때의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한동안 프리다이빙을 접기로 마음먹고 맞이한 작년의 겨울날, 나는 무언가 의미 있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친한 친구와 함께 글을 쓰는 모임 활동에 참여했다. 격주에 한 번씩 우리는 글을 썼고, 그 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6주간 이어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분명 프리다이빙을 포기할 기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내가 써 내려간 글은 거의 프리다이빙이라는 운동에 대한, 그리고 프리다이빙을 통해 만나게 된 바다라는 대자연에 대한 찬사와 다름없었다. 사실 나는 그토록 힘들었던 2024학년도에 나에게 찾아와 준, 학교 밖의 삶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해 준 프리다이빙이라는 운동이 너무나 고마웠고 소중했고 그리고 애틋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무교라 어디에 기원할 곳도 없으면서) '어차피 나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함께 살아갈 인연도 없는 듯한데, 그렇다면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라도 가질 수 있게 이퀄라이징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바람을 언젠가부터 마음속으로 수없이 빌고는 했었다. 그랬을 만큼 나는 프리다이빙이 좋았고, 좋은 만큼 잘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잘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슬펐고, 슬퍼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이 마음을 인정하고 나자, 그간 각자가 창작한 글을 묶어 글모임에서 발간할 문집에 실릴 작가 소개 글이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가졌다. 과연 어떤 표현으로 나를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나를 설명하기로 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나 보다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이퀄라이징이 잘되어서 깊고 넓은 바닷속을 유영할 수 있는 프리다이버가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놓지 못하여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그 어느 날을 오늘도 간절히 바라고야 말았습니다.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라는 답 없는 변수로 이루어진 인연의 문제에 비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몸을 길들이는 편이 훨씬 더 쉬워 보이는 요즘이다.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녀 보고,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이퀄라이징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 그 어느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미숙함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즐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치아 문제로 (마음이 있다 해도 프리다이빙을 어차피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시기를 살게 되면서, 도리어 프리다이빙에 대한 애정이 내 예상보다 더 완강함을 깨닫는다. 종종 느끼게 될 실패가 두려워서,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가 싫어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겠지. 그것은 나의 방식이 아니니까.
이번 연휴가 끝나면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예상치 못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덕분에 올해의 첫 바다를 보게 될 듯하다. 너무 머지않은 시간 안에 프리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가는 날을 맞이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그저
튼튼 치아를 장착하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숨을 참는,
그 고요한 환희의 순간을 기다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