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려는 그대에게 1
혹시 스포츠를 좋아하시는가?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인데, 특히 야구!!! 야구를 가장 좋아한다, 대부분 텔레비전 앞의 시청자로서 열광한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나 드라마틱한 결과가 연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강력한 우승 후보가 예선에서 떨어졌다든지, 최약체로 평가받던 팀이 놀랄 만한 팀플레이를 선보이며 역전승을 거두었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예측 불가능함’이 스포츠의 매력이다.
그러나 이것은 팬들의 입장이고, 예상 외의 결과를 받아 든 선수나 코치는 아마도 경기 과정을 되돌려 보고, 냉정하게 분석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는 법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을 것 같은 내 감정 속에서도 일련의 ‘패턴’이 숨어 있다. 이를 도출해 낼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보다 건설적으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석에 필요한 일정량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렇다, 당신이 여태까지 겪어 왔던 수많은 시행착오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인 걸 아는데도 결코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인 걸 아는데도 결국 좋아져 버리는 사람이 있다. 대체 이러한 비논리적인 행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나는 첫 연애를 같은 동아리 사람과 했었다. 당연히 자주 보다 보니 정이 들어서 좋아진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처음 보았던 순간에 분명히 생각했었다. ‘언젠가 이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라고.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말이다. 또한 같은 공간에 있었던 몇몇의 동갑내기 친구들을 보며 동시에 생각했었다. ‘절대로 이 사람을 좋아할 일은 없겠다’라고. 대체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은 (스포츠 용어를 빌리자면) 사랑에도 엄연히 ‘예선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내 마음속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신의 실력을 뽐낼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나에게는 아래와 같은 등식이 성립했다.
• 예선을 통과한다=본선에 진출한다=소위 말하는 ‘썸’이라는 걸 언젠가라도 타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 예선에서 탈락한다=본선 진출에 실패한다=소위 말하는 ‘썸’이라는 걸 타게 될 가능성이 전무한 사람을 말한다=평생 좋은 친구, 선배, 동생 등으로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대체 예선 통과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경우에는 솔직히 말해서 ‘첫인상’이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첫인상이라 함은 ‘외모’와 ‘분위기’ 정도를 포함하는 말일 텐데, 이들 모두 시각의 영향을 받는 요소들이다. 심지어 내 시신경은 지나치게 단호해서, 대략 3초 정도면 예선 통과 여부를 속전속결로 가려내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생각보다 공고하게 마음속에 남아서, 어지간해서는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쩐지 내가 외모 지상주의자인 듯하여 죄책감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철이 덜 들었다며 주변 사람들이 나를 혼낼 것만 같아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 나의 ‘시력’에 하나같이 상당한 의문 혹은 반감을 가지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말하는 첫인상의 기준이 ‘내 눈에 콩깍지’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개인의 취향’인데 누가 욕할 수 있단 말인가!
나와는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기준을 지니고 있으리라. 확실히 예선의 기준은 주관적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내면, 다시 말해 사람의 됨됨이를 살펴보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한눈에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나 같은 분이 계시다면 자책하지 마시길. 결국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찰나의 순간에 할 수 있는 ‘재바른’ 판단을 내린 것뿐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상대방 역시 자신만의 기준으로 나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 이후에 누군가를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알아 가는 것은 본선에서 할 일이다. 본선에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보다 정형화된 기준이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가치판단을 내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본선의 기준은 예선전보다 객관적이다.
여하튼 그렇게 예선을 통과한 누군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본격적인 본선이 시작되기에 앞서 당신도, 상대방도 몸을 풀고 있다. 서로의 인연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이 호감의 끝이 과연 사랑으로 이어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예선은 끝났다. 준비되었는가?
그렇다면 Ready, Get Se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