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V가 싫다. 어릴 때 TV에서 본 아빠 모습을 잊을 수 없어서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TV는 내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교통사고 상황이라며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건조하게 읊던 앵커의 말이 어찌나 폭력적이던지...
엄마는 오늘 아침에도 TV 삼매경이셨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어릴 때부터 봐 온 모습이다. 늘 TV를 보며 미싱기를 돌리시던 엄마. 당시 삼 남매를 홀로 돌보며 가계를 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다고 한다. 솜씨도 있으셔서 우리 남매는 큰 결핍 없이 자랄 수 있었다.
요즘은 소일거리 위주로 하시지만, 남는 시간에도 손을 놀리지 못하시는지, 집 안의 실로 된 모든 것을 손보신다. 오빠가 사 왔던 찢어진 청바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TV에나 나오는 일화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 아침, 내 속옷을 손보시던 것은 별일도 아니었다. 구멍 나서 버리려고 꺼내 둔 것이었는데. 홀로 삼 남매를 키우며 몸에 밴 절약 때문이었겠지. 엄마는 새 속옷조차 사지 않으시니까... 뻔히 알면서 왜 그랬을까. 왜 지지리 궁상이냐고. 돕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을까. 나중에 후회될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해 놓고. 정말 수없이 다짐해 놓고...
갓 중학교에 들어갔을 즈음, 아빠보다 아이돌 오빠들이 멋져 보이기 시작한 시기였다. 인기가요에 나올 오빠들을 봐야 해서 학원 안 간다는 말도 안 되는 투정에, 아빠께서 녹화해 주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었다. 세상에 TV 녹화라니. 불과 10년 전 일인데, 왜 이렇게 먼 옛날 같을까. 아빠는 마치 어제도 같이 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다음 날 아침 비디오 녹화가 안 된 걸 보고 어찌나 난리를 쳤던지...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실수에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어려서 그랬는지, 버릇없는 막내의 특권이었던 건지... 아침부터 하염없이 미안하다던 아빠의 풀 죽은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마지막 모습이라 더더욱.
아빠가 나온 TV 뉴스는 점심 무렵이었다. 교통사고 속보 한켠의 사진. 믿고 싶지 않은 얼굴. 그날 밤, 검은 옷을 입고 펑펑 울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르겠다. 하루 전만 해도 그렇게 가기 싫던 학원이 어찌나 가고 싶던지. 언니 오빠한테 혼난 걸 부모님께 화내고, 방 문을 쾅 닫은 후 침대에 누워 뒤늦은 후회를 삼키며 잠들던 그 일상이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아침 일찍 나갔던 언니 오빠도 내가 아빠에게 화낸 이야기를 듣고 엄청 꾸짖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남긴 나 스스로가 가장 증오스러웠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누그러뜨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 수없이 다짐했다. 다시는 뒤늦은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그런데도 오늘 아침 또 엄마한테 모진 말을 쏟아낸 거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굳이 피곤하다는 친구를 불러내서 저녁도 사고 노래방까지 쐈다. 정신없이 놀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다시 가슴이 아려온다. 어차피 이렇게 가슴 아플 거면 돈이라도 아낄걸. 엄마가 좋아하던 간식이라도 사 가서, 미안하다고 꼭 안아줘야지. 그런데, 도통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막내라서 그런가, 자식이라 그런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이라도 사 가야겠다.
끼이익. 괜히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찌 들으신 걸까. 저놈의 TV 소리는 문소리도 못 가려준다.
"우리 아기 왔어? 밥은 먹었어?"
"내가 나이가 몇인데 아기야... 그리고 이 시간엔 당연히 먹었지."
아기란 호칭은 막내의 숙명인 것 같다. 그 핑계로 난 괜히 또 투정이다.
"일로 와서 바늘 좀 끼워줘. 도통 안 보여서 너만 한참 기다렸다."
바늘을 끼워주려는데, 엄마 무릎 옆으로 헌 양말 무더기가 보인다.
"아, 엄마 좀 궁상떨지 말라고...!"
분명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들어왔는데, 대체 난 왜 이럴까. 순간 솟구친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주저앉아 무릎을 감싸고, 고개를 파묻었다.
"우리 아기, 무슨 일 있었어?"
놀란 엄마의 양팔이 어깨 위로 느껴진다. 왜 또 이렇게 따뜻한데. 왜 또 사람을 힘들게 하는데...
엄마랑 먹으려고 사 온 붕어빵 봉지가 부스럭거린다. 저건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데. 이러다 또 식어버리고, 뒤늦은 후회 할까 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