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는 동물이지만 식물처럼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뇌까지 먹어치우고 식물이 되는 동물이라니. 이 얼마나 한심한가.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저기요, 아이스아메리카노 언제 나와요?"
바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문.
다들 하기 싫은 일이니 대가가 주어지겠지만,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다.
아니, 생각조차 사치.
이미 메마른 감정과 사고도 더욱 줄인다.
이 시간에는 몰려드는 주문을 해결하는 게 먼저다.
한 시간 시급 만 원.
내가 외워야 하는 메뉴는 백여 가지.
하루 내리는 커피 백여 잔. 정말 빽빽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싯다르타는 왜 그렇게 고행을 했나 싶다.
이게 바로 무아의 경지인데 말이다.
"알바, 오늘도 고생했어. 저녁 근무는 내가 할게. 조심히 들어가고."
아쉽게도 해탈 직전에 퇴근이다.
땅거미가 내리기 전인데 술집들은 시끌벅적하다. 부럽다. 저 체력이 말이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젠 항상 몸이 무겁다. 걱정되어 찾은 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단다.
엄마 밥을 너무 오래 못 먹어서 그런가.
어릴 때는 문이 참 좋았다.
문만 열면 따뜻한 저녁 냄새가 나고, 부모님의 대화 소리가 좋았다.
문만 열면 친구들 뛰어노는 시끄러운 먼지 냄새가 좋았다.
오늘도 문은 기분 좋게 열린다.
이 덜컹거림이 날 반겨주는 유일한 소리였기에.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가, 배달 앱을 켰다가 껐다가.
참치캔을 열고 즉석밥을 돌린다.
숨만 쉬어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멍게처럼.
적적함을 달래려 튼 TV의 내용은 도무지 모르겠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하루 종일 TV만 보고 계시던데, 무슨 재미였을까. 귀도 안 들리셨는데.
"304호, 잠깐 나와봐요. 옆집이에요."
앞집 아저씨의 부고를 건너 듣게 되었다.
처음 들은 이름.
처음 이사 온 날, 짐 옮기는 걸 도와준 사람이었다. 나도 한 번쯤 꼭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사라졌다.
자리로 돌아오니 밥이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