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가 음식 하고는 친하질 않았다.
막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면 배가 고파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고
배가 아무리 고파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깨작거리는 게 다반사.
그래서 오죽하면 캡슐 하나로 배고픔을 없애고 열량을 얻었으면 좋겠다 싶었을까.
상황이 이러니 요리하는 걸 좋아할 리가.
음식은 먹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에게 요리는 시간과 노동을 투자한 만큼 티가 나지 않는 비효율적인 활동이다. 내 위주로만 만든다 해도 싫은 '요리'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도 해야 하고 아이들이 자라는데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하게끔 항상 신경 써야 한다. 거기다 얼마 전 먹었던 메뉴가 너무 빨리 돌아오는 것도 싫고 나도 안 먹으면서 며칠씩 똑같은 반찬을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가장 큰 고민이 '오늘 저녁엔 뭘 해서 먹이지..?'이고 그렇게 해 먹이는 일이 나에게 제일 큰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결혼 6년 차가 된 지금의 나는 냉장고의 있는 재료를 짜 맞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모두 다 같이 잘 먹은 식사가 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고 오늘 할 일을 다한 기분마저 든다.
특히나 한두 가지의 재료만 사 와서 최대한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만들어 먹었을 때, 그래서 식재료를 거의 버리지 않을 때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언젠가부터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엄청 중요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 만큼은 먹는 즐거움이 큰 사람이었으면 싶었고 어렸을 때부터 음식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기 싫었다. 그래서 호기심으로 어른 먹는 건 모두 달라할 때부터 어릴 때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빼고는 다 맛 보라며 줘버렸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우리 집 아이들은 잘 먹는다. 아직까지는.
처음 줄 때부터 어른과 똑같이 사골국엔 쫑쫑 썰은 파를 넣어줬더니 그 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 먹었다. 그게 판지 뭔지도 모르고 애들한텐 그냥 사골국은 생파가 좀 우러난 국물 맛인 거다.
군고구마를 먹을 땐 갓김치를 엄청 집어먹는다. 세 살, 다섯 살 아이가 조금만 목이 메이거나 느끼한 음식을 먹으면 김치를 찾고 더욱이 물에 씻지 않고 먹는다니 다들 놀란다.(물론 양념이 덕지덕지 묻지 않은 줄거리 부분이지만.) 식당에 가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허여 멀 건한 깍두기가 있으면 국물채 마시려 들고 달걀 프라이와 김치를 같이 먹으면 맛있는 것도 안다. 특히나 이것저것 반찬 해서 한 숟갈 뜰 때마다 골고루 먹이려는 것보다 무엇보다 먹일 때 내가 편한 이유로 집에서 김밥을 자주 싸 먹는데 아이 입에 조금 크다 싶어도 최대한 얇게 썰어 김밥 속이 있는 그대로를 먹였고 김밥은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 밖에도 고기 구워 먹을 때도 구운 양파나 구운 마늘 구운 버섯을 맛있게 먹고 심지어 파절임이나 부추 절임을 아주 조금씩 넣고 쌈도 싸 먹는다.
어른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시기를 잘 이용하면 먹어라 먹어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잘 먹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가 요리 중이면 주방은 위험한 곳이기에 주변에 두질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난 불을 쓸 때 빼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래도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요리할 때도 그대로 놔두면 스탠 양푼이나 반찬통 뚜껑이랑 씨름하며 놀면서 내가 식재료를 다듬거나 자를 때 관심을 보인다. 따로 그런 시간을 내기보다 그때 만지고 냄새 맡고 먹어보게 해 주었다.
특히나 내가 당근이나 오이 같은 채소를 썰면서 집어먹는 걸 보면 어느새 쫓아와 달라고 매달렸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채소를 접하게 했고 지금은 그 덕분에 채소 자체의 생소하게 느껴지는 향과 맛 때문에 편식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굳이 간식시간을 정해놓기보다 과일이나 멸치, 견과류, 고구마나 가래떡 같은 간식을 항상 보이는 곳에 놔둬서 과자 같은걸 찾을 새가 없이 놀다가도 입이 궁금하면 알아서 집어먹게끔 했다.
내 아이들이 입 짧고 잘 안 먹는 나와 달리 이렇게 잘 먹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했던 작은 노력들이 쌓여 빛을 발하는 거 같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군것질은 최대한 늦게 그리고 조금씩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잘 먹는 아이였어도 일단 군것질을 맛보면 어쩔 수 없이 밥 먹는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난 아무리 좋은 게 들어있다는 과자도 어쩔 수 없이 과자란 생각에 비싼 과자나 사탕을 사는 돈이 그렇게 아까웠다. 차라리 그 돈으로 과일을 사 먹이지 하는 생각에 우리 집엔 사놓는 군것질거리가 없었다.
애초에 맛을 보이지 않고 엄마가 단호하게 안 줘 버릇하면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툭하면 군것질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일 일도 없다.
오늘은 또 뭘 해 먹으면 좋을까 하다가 별안간 예전 사진들을 뒤적거리게 됐다.
과거에 젖어들 수 있는 구실 좋은 핑곗거리가 하나 또 생겼네..
이렇게라도 애 엄마가 된 현실과 홀가분히 떠나고 자유롭게 살던 과거를 자꾸 연결시키려 하는 건지도..
그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되면 마치 진짜 내 모습이 사라지는 것처럼..
오늘따라 냉장고를 열어봐도 있는 재료로는 메뉴가 영 떠오르질 않는다. 일단 내가 조금이라도 당기는 맛이 있어야 메인이 쉽게 정해지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오빠만 좋아하는 요리를 해야 되는 날인가 보다. 애들은 냉동 갈치나 굽고 난 있는 재료로 대충 샐러드나 만들어 먹어야지.
먹는 건 예전으로 돌아갔는데 살이 빠져도 왜 몸은 출산 전처럼 가볍지가 않은 건지..
윗몸일으키기를 1분에 오십 개는 거뜬히 하던 난데 한 개 한 개가 이렇게 힘들고 결국 나도 왕년에 달리기 좀 했었다는 소리나 하고 앉았는 아줌마가 되었다니..
애 낳고 변해버린 몸 때문에 수시로 이렇게 한 번씩 우울해진다. 일단 둘째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운동부터 시작해야지.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도 금방 맛있는 거 해먹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업되고 신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서 먹는 즐거움이 중요한 거다 인생을 더 즐겁게 살 수 있으니!
카푸치너 성당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레스토랑에서의 인생 한 끼. 그냥 걷다가 우연히 만난 곳이라 더욱 좋았다.
몇 안 되는 해외에서 만난 내 인생 음식이라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트레킹 중에 먹었던 고봉 샐러드다. 나오다 마는 것 같은 메인에 곁들여 먹는 풀떼기 정도가 아니라 다양한 치즈와 감자, 베이컨, 견과류 그리고 풍성한 채소들이 샐러드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되는 어엿한 메인 메뉴였다. 영양 만점에 정말 맛있고 배까지 부르게 먹었으니 최고로 만족할 수밖에.
그밖에는 캐나다 옐로우나이프 펍에서 먹었던 '맥주 안주로 시켰던 게 얻어걸렸어요' 새우 타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라이브 공연을 보고 먹은 '뭔지도 모르고 맛에 홀려 욱여넣었어요' 페르시안식 토르티야,
호주 퍼스 일식 체인점 TAKA의 '일본을 왜 가요 호주로 와요' 가츠돈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인 산티아고를 가는 까미노 여정에서 만난 Bar의 모든 '달걀프라이와 베이컨 그리고 빵은 무제한 공짜'는 한국에 돌아가면 맨날 달걀프라이랑 베이컨만 먹어야지 했을 정도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