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혼주의자였다.
다 같이 불행해질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하느니 모든 게 나 하기에 달려있는 독신으로 살겠다고 정해놨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고 차라리 나 혼자 덜 행복한 게 낫다고 확신했다.
결혼을 하면 아이들 때문에 헤어지지도 못하고 책임감에 얽매인 채 평생을 가족에 끌려다니며 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 혼자만 건사하면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그리고 그에 따른 외로움도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외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 외로움도 그리 힘들지 않았고 그래서 더 외국생활을 했던 것 같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외로움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일단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어 외로움 따위는 느낄 틈이 없다. 말 그대로 외로움이란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해외에서 살아보고 또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느낀 건 난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함께 해서 좋은 건 순간뿐이고 그 순간을 제외하곤 계속 배려하고 맞추기 위해 힘든 시간의 연속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좋든 나쁘던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고 벌어진 결과에 대해선 누구 탓할 거 없이 나 혼자서 감당하는 편이 쉬웠다.
결혼 6년 차인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결혼과 여행 혹은 해외 생활을 해보는 것과 달리 훨씬 장기전이라는 거다. 힘든 과정을 잠깐 몇 년만 참으면 되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는 더더욱 안된다.
결과가 당장 눈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예를 들면 육아, 재테크 등등) 그 멀고 먼 결과를 향해 가는 길에 서로가 의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맞춰가는 과정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나도 처음엔 배려라는 이름으로 '희생'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포기'했다. 이상하게도 긴 연애 기간 동안 난 그야말로 갑 중에 갑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선 상대에게 맞춰지기만 했고 그게 힘들어 결혼을 후회한 적도 많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좀 더 참고 상대에게 맞춰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과정이 힘들었던 거다.
다행히 내가 힘들어지면 결국엔 모두에게도 안 좋은 거라는 걸 깨달은 후엔 필요할 땐 '요구'했다. 평상시 말수가 적은 남편에게 말 그대로 대화를 요청했고 처음에만 다 들어주는 것 같았으나 결국엔 그 과정을 통해 서로가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이 되었다.
그렇게 비혼주의자였고 결혼을 후회했던 사람이 결혼의 장점을 얘기하게 되었다. 확실히 함께라 의지가 되니 부담도 덜어지고 그에 따른 안정감도 자연스레 생겨난다.(지금은 이 안정감이 나를 발목 잡고 있지만.)
이젠 충분히 과정도 즐거울 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너무 애쓰지 않으니 안 힘들고 요구할 건 하면서 취하게 되니.
가족 모두가 자. 신. 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적. 당. 히. 하면 병이 안 생기는 것 같다.
무엇이든 균형 있게 하는 게 최고니까.
비혼주의자였을 땐 내가 그리는 가정은 너무 이상적이고 특히나 엄마, 부모라는 기준이 너무 높았던 거다. 그래서 감히 결혼생활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던 거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비혼주의자였던건.
대학에 다닐 때 3학년을 마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갔다.
아직 어려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의욕이 넘칠 때라 난 영어도 안되면서 무작정 날아갔다.
거기다 이왕 왔으면 최대 2년을 있어야 한다고 계획하고 애초부터 비자 연장을 위해 농장부터 갔다.(1년은 기본, 이후엔 농장이나 공장에서 3개월 이상 일한 경력으로 1년을 추가 연장받을 수 있다.)
계획대로 2년을 꽉 채워서 있진 않았지만 1년 6개월 동안 일하고 어학원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면서 내가 본 한국 사람들 중에 특히나 여자들은 나이가 많았다. 직장에서 몇 달간 어학연수로 온 사람, 뒤늦게 영어공부를 잘해보고 싶어서 왔다던가 호주에서 영주권을 얻어 살아보겠다는 사람 등등 그중 대부분은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아실현 혹은 외국 생활 한번 해보고 싶어 온 사람들이었다.
그 모든 사람들과 다 깊게 대화하고 친한 사이가 되지 않아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행하고 어학원 다니며 돈을 쓰러 오는 사람도 많은 만큼 우리나라의 동남아 노동자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토마토 농장에 다니는 사람이 사는 캐러반에 갔을 때는 쥐가 찍찍 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봤고 흙에 무릎을 꿇고 기어 다니며 빠르게 파를 뽑아 흙을 털어내고 다듬는 '파신'이라 불리는 사람은 모두의 부러움을 받았으며 여행자들이 머무는 백팩커스 도미토리에 장기 투숙하며 샐러드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은 사방을 담요로 막은 2층 침대의 아래칸이 개인 공간의 전부였다.)
내가 아일랜드를 간 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조금이라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해보고자 준비해서 플로리스트로 일 하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일할 곳이라던가 거취를 정해놓고 간 건 아니었고 일단 학생 비자를 받아 학교를 등록하고 포트폴리오 하나 챙겨간 게 다였다.
그렇게 간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은 한마디로 소설 '운수 좋은 날'이다.
구하는 사람은 많은데 집이 없어서 집 구하는 게 전쟁이라는 아일랜드에서 집을 알아본 첫날에 구했다. (다른 데는 서양애들이랑 같이 면접도 본다는데 그럼 동양인이 많지 않은 아일랜드에선 거의 되기 힘들다는데 여긴 전에 살던 한국인 여학생이랑 집주인들이 사이가 좋아서 마침 또 한국인을 구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집 들어가기 전에 디파짓도 호스텔로 직접 받으러 와줄 만큼 젊은 집주인 부부가 나를 맘에 들어했다.)
그리고 구글 지도로 더블린 꽃집 리스트를 쫙 뽑아 돌던 첫날, 매장을 늘려 백화점 내에 입점한 지 며칠 안된 가게에 취직했다.(다음날 열한 시에 와줄 수 있냐 약속만 잡은 채 그 뒤로 일곱 군데를 더 돌았는데 두 곳은 없는 주소, 세 곳은 사람을 구하지 않았고 나머지 두 곳은 직원들만 있어서 사장 있는 날을 물어보고 나왔다. 다음날 가서 핸드타이드 부케를 만들어 보이고는 바로 일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발렌타인 데이, 성 패트릭스 데이, 마더스 데이까지 줄줄이 이어진 아일랜드의 꽃 시즌을 경험했던 내 작업대에서..
살 집이랑 일 할 데가 있으면 외국 생활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남들과는 달리 술술 풀리는 게 이상할 정도로 몇 달 아주 잘 지냈는데 슬슬 주급이 밀려 월급이 되고 어느새 월급까지 밀리며 막상 금전적으로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왜 그렇게 사람을 잘 믿는 건지 일하는 중간에도 주인을 찾으며 너는 돈 잘 받고 있냐고 물어보러 오는 외국 사람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같이 일하던 동료는 한 번씩 돈 잘 받고 있냐 묻다가 갑자기 그만뒀는데 그 당시 나는 잘 받고 있을 때라 '나한텐 안 그러겠지, 난 단골이 많으니까' 하며 알아도 모르는 척 외면했다. 하물며 월급이 밀리고 있을 때에도 부탁받으면 쉬는 날도 나가 열심히 일하고 곧 주겠다는 말을 진짜 믿었었다.
그 시기에 불현듯 떠올랐다. 몇 년 전 호주에서 봤던 나이가 꽤 있던 한국 여자들이.
바로 내가 그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시기에 한국에서 자리 못 잡고 떠나온 루저.
내가 호주에서 그렇게 바라봤던 사람들이나 지금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뭐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혹은 특별하게 살아보겠다고 적은 나이도 아닌데 타국까지 와서 이렇게 힘들게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건지 부끄러워지고 한심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 접고 들어올 수 없었던 건 그럼 나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이 울기도 하고 기도하며 매달렸던 유일하게 그리운 곳. 매주 미사를 드렸던 동네 성당의 스테인글라스는 정말 환상적이다.
그럼 만약에 돈도 제대로 받고 그래서 아일랜드에서 이런 어려움 없이 잘 정착했다면 어땠을까?
그걸 넘어 정말 결혼을 안 하고 나름 성공해서 잘 살았다 해도 내가 나중에 돌아봤을 때 스스로 즐겁게 잘 살았다고 그러니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키야 나 인생 참 잘 살았구나~' 싶은 뿌듯한 생각이 들까?
이렇게 내 가치관 전체가 흔들렸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명쾌하게 내려졌을 때 비로소 훌훌 털고 돌아올 수 있었다.
"길게 여행한다 생각하고, 가서 힘들면 바로 돌아와"
결혼 생각을 안 하는 나와 오랫동안 만나다가 떠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던 사람.
인생도 인연도 진짜 타이밍이다.
만약 내 인생에 결혼이 있다면 이 사람과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
돌아가면 그 사람과 제대로 잘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덜 힘들겠다고 결혼 안 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맘껏 즐기면서 산다 해도 결국엔 허무함만 남을 거 같았다. 나 혼자만 생각하며 사는 건 정말 너무 가벼운 인생으로 느껴졌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키워보고 하면서 남들 다 하는 힘든 일도 겪어보고 그걸 잘 이겨냈을 때 이게 훨씬 고차원적인 인생 같았다. 내 인생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내 가정을 일구고 자식들이 잘 자라주었을 때 내 노력이 훨씬 더 값지고 그런 인생이 정말 위대할 거 같았다.
아일랜드에서의 힘든 시간으로 갑자기 결혼에 대해 이상적으로 변한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다. 한 남자와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끈기 부족한 내가 아이를 키우는 장기 레이스를 한다는 게 많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하자며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맘이 더 컸다. 어려움도 잘 이겨내고 시련도 현명하게 극복해 내는 진짜 어른,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땐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보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그건 할 수 없지 하는 생각이 훨씬 컸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아일랜드에서 돌아와 1년 후에 비혼주의자에서 기혼자가 되었다.
지루하지 않은 아일랜드 날씨가 준 선물
아무래도 원래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 성격은 결혼을 결심할 때 다 써버렸나 보다.
결혼을 하고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난 되게 특별하다고 착각하며 살았구나 싶고 그러면서 모든 것에 자신 없어지고 소심해지고.. 그런데 이런 내가 맘에 들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시도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의욕 자체가 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애 키우는 거만 알지 그동안에 알던 건 다 잊어버린 멍충이가 된 현실을 결혼 탓으로 돌릴 때도 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후에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는 슈퍼우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또한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그래도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힘들었다.
그리고 우선 지금은 육아에 집중해야 되는 시기라며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를 합리화시켰는지 모르겠다.
이제 막 뭔가를 다시 해보려 하는 지금, 결혼을 앞두고 썼던 글을 읽어봤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결혼 생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의지와 믿음이 있던 나는 또한 힘들 때마다 결혼을 후회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문제가 생기고 시련이 닥쳐도 결국엔 내가 노력하는 대로 잘 흘러갈 거라는 건 결혼 생활이 늘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거란 얘기이니까.
하지만 비록 결혼을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심각해지지 않아도 된다. 살면서 당연히 들 수 있는 감정이라고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오고 그 후회스러운 감정도 곧 무덤덤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미련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결과를 더 좋은 쪽으로 상상하게 만들지만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고 그 상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거지 결혼이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정말 결혼 때문이라면 후회보다 일단 뭐라도 해야 한다. 상황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나 자신부터 노력을 해야 한다.
결혼 탓이 아니다 나 자신의 문제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를 넘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난 계속 노력 중이다.
신은 공평하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다 똑같은 가치의 재능과 축복을 공평하게 주셨다.
머리로만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깨닫고 그 믿음으로 감사하게 살고 있는 내게는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른 채 각기 나름대로 힘들고 마음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자기가 가진 것은 못 보고 갖지 못한 것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이 얼마나 좋고 많은걸 갖고 있는지를 알았으면 좋을 때가 많다..
그리고
이미 많이 가지고 있어서 더 갖고 싶은 게 뭔지 잘 몰라 힘들어하고,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보다
작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더더욱 행복해질 여지가 아직도 많이 남은 내가 너무 좋다
이래서 난 없이 시작해도 둘이 같이 이뤄나가는 기쁨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 나 자신을 믿는다
물론 내가 쓸 수 있는 지혜로움과 현명함을 다 쏟아붓는다 해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시련이 닥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난 원래 근자감이 대단한 사람 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 해도 잘 넘어갈걸~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을 거다 그동안도 그랬던 거 같다
내가 이렇게 큰 걱정 않고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면 진짜 그렇게 잘 풀린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 뭔 뜻이야 이 말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난 진짜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2014.10.29.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