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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트레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돈만 많다면!

by 타샤할머니


얼마 전 네팔 트레킹 사고 뉴스를 접했다.

사고가 난 지점 데오랄리 어느 부근에서 난 포터와 O뚜기 크림수프를 끓이고 햇반과 볶음고추장으로 맛있는 한 끼를 해 먹었었는데...

내가 걸었던 그곳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었나 의아스러웠고 -훨씬 더 위험한 지점이 널리고 널렸다. 그렇게 따지면 트레킹 자체가 위험하지 사고는 어디서든 발생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난 정말 잘 다녀왔던 거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뉴스로 인해 네팔에서 썼던 일기를 꺼내 읽게 되었다.

지금이라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 당시 내 일기장에도 생존과의 싸움이구나..






2011년 1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이렇게 길게 해외에 나가는 것도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며 다녀왔던 곳이 네팔이었고 열흘 남짓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포함해서 한 달 정도 다녀왔다.

그 당시 책도 다양하지 않았기에 론리 플래닛 한 권에 의지한 채 출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많은 해외 경험 중 가장 무모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의도해서 다른 도움이나 정보를 일절 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네팔 트레킹 전문 여행사에 가서 상담도 해봤지만 나에겐 너무나 호화스러웠고 여행사에 모든 걸 의존하는 시스템에 학을 떼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제대로 된 경험이 아니라 맛보기 같은 체험을 위해 그 비싼 경비를 들여가며 굳이 네팔까지 날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럴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발품 팔았을 때와 경비가 무려 3배나 넘게 차이가 나는 걸 확인하고는 역시 이번에도 혼자 부딪쳐보기로 했다. (사고를 당한다면 오히려 내가 당했어야지 3배가 넘게 차이 나는 여행사 트레킹이 거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전문성으로 무장되어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여행사만 찾아가면 된다- 난 그런 방법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현지에서 모든 걸 정해야 하는데 가기 전부터 잘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계획했던 만큼 못하고 돌아오는 건 아닌지 많이 걱정했다.

그리고 원래 여행은 준비할 때부터가 즐거움의 시작인데 애초에 관광만이 목적이 아니라 좀 더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맘이 컸기에 여느 해외여행처럼 출국 날짜를 마냥 설렘만으로 기다리지 못했다.)

일단 혼자 부딪치는 시도를 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맘 편히 즐기다 오자고 생각하려 해도 출발하기 전부터 난 욕심을 부렸던 거다.




"욕심과 포기"

남의 것을 부정하게 탐하는 욕심 외에 나 자신의 발전에 원동력이 되는 욕심도 나쁜 것일까?

분수에 넘치거나 지나치게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어느 정도까지가 분수에 넘치는 것이고 지나친 것일까?

그럼 미리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이상은 얻으려 하면 안 되는 걸까? 아님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걸까 아님 내 분수를 알고 적당히 만족하며 살아야 할까?

마지막으로 내가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건 포기일까?


난 어렸을 때 욕심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데 세상에는 이쁜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

하지만 다 할 수 없고 다 가질 수 없기에 겉으로만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지 속은 부정적이고 반항심 많은 아이였다.

호주에서 돌아와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다 할 수 없고 다 가질 수 없는 게 누구의 탓도 아닌 다 내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가진 능력은 보지 못하고 못 가진 것만 갖고 싶어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사람 자체가 여유로와졌다.

하지만 내가 더 발전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싶어서 포기를 하는 건지, 정말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한 번씩 의문이 생겼었다.

그게 꼭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게 아니고 답은 다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 자신이 맘에 안 들어서 너무 싫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죽어라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지나치게 과도한 욕심으로 힘들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고통스럽지 않은걸 말한다.


우리 아이들도 너무 사력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고 자기가 선택한 일에 즐겁게 임하며 인생 자체를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물려줄 것들이 많아야 될 거 같은 미안한 맘도 좀 들기는 하지만 대신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크도록 아이가 동기와 열정을 느끼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주고 격려해주어야겠다. 물려줄게 많지 않아 시행착오는 좀 겪겠지만 이런 엄마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으로 아이만의 고유한 것을 찾아나가길, 자신의 가치를 잘 알아서 없거나 조금 부족한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길, 기꺼이 노력하고 이뤄가는 과정도 즐길 줄 아는 마음 건강한 사람으로 크길 간절히 바란다.





카트만두에서 워밍업 정도의 짧은 트레킹 코스를 도전했었지만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은 후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 상태로 포카라에 왔을 때의 나는 이미 반쯤 포기한 채 힘들면 그냥 여행객도 많이 한다는 2박 3일 푼힐에 다녀오는 짧은 코스만 하고 오자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그나마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정말 행복한 트레킹 첫날 -몸이 가뿐했다. 경치들이 보였다- 을 보내고 둘째 날 고레빠니에 도착했는데 점심으로 먹었던 감자볶음 요리가 체한 건지 비실대다가 잠들었다. 겨우 일어나 소화제를 먹고 다시 잤는데 그날 밤은 또 열에 시달렸다. 그래도 새벽에 눈이 떠져서 일단 출발은 했지만 중간에 되돌아와야 했고 쉬어도 나아지지 않는 몸상태에 포터와 함께 아랫마을의 작은 병원에 갔다 왔다. 병원 이래 봤자 간호사가 증상을 듣고 추측해서 약을 주는 정도였는데 간혹 심한 사람은 푼힐 정도만 오르는데도 고산병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체해서 혹은 몸살이 와서 안 좋은 컨디션으로 더 높이 오르지 못한 것인지 정말 고산병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꼭꼭 움켜쥐고도 더 달라고 떼쓰는 욕심쟁이처럼 '꼭 가야 해요, 꼭 하고 싶어요, 꼭 계획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같은 기도만 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이번엔 딱 여기 까지라면.... 그냥 이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최대한 즐기고 돌아갈게요! 이대로 내려가더라도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고 감사의 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담날 눈을 떴을 때 나는 몸이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트레킹을 시작할 때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푼힐은 반드시 올라갔다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팔에 트레킹을 하러 와서 푼힐도 가지 못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정말 푼힐은 그렇게나 간절했고 내 최소한의 욕심이었던 거다.

하지만 내일도 시도해보고 안되면 내려가자고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니 담날 열이 내리고 전날보다 가뿐히 침낭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힘들었지만 어제처럼 당장 주저앉게 되는 힘듦은 아니었고 구름에 둘러싸인 산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힘든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에서 해가 떠오르는 걸 보고 싶은 맘에 나도 모르게 속도를 더 내었고 그렇게 멋진 경관의 힘에 이끌려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하게 됐다.

그리고 그 뒤로 5일을 더 걸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고 3일 동안 내려와 총 11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3,210 미터 푼힐 전망대에 올라가서 경치를 바라보고 난 뒤 저 벤치에서 마신 차 한잔은 정말 따뜻했고 달았다.
해가 떠오르면서 구름이 걷히거나 도로 구름에 가리고, 몇 번이나 풍경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나도 많은 돈을 내는 대신 여러 수고를 아끼고 먹는 것도 맛있고 든든한 한국 음식을 먹으며 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힘들기 위해 네팔 트레킹을 가는 건데 과정을 그렇게 쉽게 하려는 게 이상하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오르려고 요리사와 많은 포터를 쓰는 게 내 가치관에도 맞지 않았다.

카트만두에서 수시로 바짝 붙어오는 호객행위꾼을 물리쳐가며 혼자 일종의 트레킹 자격증인 TIMS 카드를 발급받고, 트레킹 에이전시를 돌아다니며 상담을 하고, 여러 곳 중에서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번씩이나 포기를 생각했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기에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뿌듯했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힘들어도 이런 건 이겨낼 수 있다고 자처한 고생길이 황천길이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내가 아무리 잘나도 그리고 많은 노력을 한다 해도 모든 걸 다 내가 좌우지할 수는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또 한 번 느꼈다.

돈 많이 써서 쉽게 트레킹하고 온 사람들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던 이 오만방자함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O뚜기 크림수프를 끓이고 햇반과 볶음고추장으로 맛있는 한 끼를 해 먹었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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