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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솔아 Oct 17. 2023

나의 가족, 해삼

호냥이의 두번째 이름


    호냥이가 나의 가족이 된 것은 연인과의 동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마포구, 남자친구는 강남구에 살고 있었다. 먼 거리 탓에 데이트때마다 둘 중 한명이 희생해야 했다. 그동안의 내 생활 반경에 속해 있지 않던 강남 지리에 익숙해져갔다. 남자친구는 나를 보러 왔다가 밤 늦게 차로 돌아가곤 했다. 남자친구의 밤 눈이 어두워서 혹여나 사고가 날까봐 항상 걱정됐다. 그러다 우연히 둘 다 집 계약이 비슷한 시기에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같이 살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기르던 고양이와도 같이 살 수 있다니, 설렜다. 덕분에 나는 두 가족을 한번에 얻게 되었다.


    각자의 짐이 한 집에 합쳐졌다. 분주한 아침 일과를 서로 돕고, 일 끝나면 한 식탁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나날이 이어졌다. 그동안 호냥이는 우리의 충실한 증인이 되어 주었다. 우리의 일상 속에는 언제나 호냥이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에 호냥이도 속하게 되었다.  


    어느날은 집 사진을 찍었는데, 호냥이가 마치 가구처럼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해삼처럼 토실토실하게 누워있는 호냥이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찡했다. '집'과 '가족'이라는 말이 서로 뗄 수 없듯이, 이제 집에 돌아오면 나의 가족, 호냥이가 나를 반기는 게 자연스러웠다.


가구처럼 누워있는 해삼


    글을 쓰는 지금, 호냥이는 내 옆에 누워있다. 다시 봐도 호냥이는 해삼 같다. 벌러덩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특히 그렇다. 통통하고 둥근 곡선을 그리는 몸.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만지면 물컹거리는 뱃살. 느릿느릿하고 더딘 움직임 때문에 더더욱 해삼 같다.


    호냥이의 이름을 다시 짓는다면 해삼으로 지을 것이다. 아무리봐도 호냥이는 겁이 많아서 '호랑이 고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기엔 역부족이다. 해삼이 더 어울린다. 해삼은 여간해서는 죽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한다. 호냥이도 해삼처럼 오래오래 사는 장수 고양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고양이로 기네스 기록에 올라갈 호냥이를 소망하며. 



호냥이의 해삼 모먼트 : 벌러덩 눕는 습관은 애기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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