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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솔아 Oct 13. 2023

냥집사의 언어

알게 되면 다르게 보이는 것


    얼떨결에 고양이  마리와 함께 살게 되면서, 새롭게 배운 것이 많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용어에도 익숙해졌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늬에 대한 단어다. 나의 고양이, 호냥이의 무늬는 '고등어'. 고양이를 해산물에 비유하다니. 재밌는 말이다.  외에도 치즈, 턱시도, 삼색이 ... 고양이의  무늬를 부르는 말은 귀엽다.



    언어를 알아갈수록, 나의 애정은 넓어졌다. 우연히 길냥이를 마주치면 '저 턱시도 냥이는 양말을 신어서 귀엽네'라며 더욱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전에는 모두 뭉뚱그려 '고양이'였는데, 지금은 털 무늬와 색깔에 성격까지 보인다. 낯선 고양이를 만나더라도 능숙하게 눈 키스를 나누고 손가락을 내밀어 인사도 해본다. 운이 좋으면 털을 쓰다듬는 영광도 누릴 수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기쁨이다.


    세상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TV에서, SNS에서, 길거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양이들. 그 많은 고양이들 중에서도 나의 고양이 호냥이와 낭냥이를 길들이고 있다. 매일 이름을 불러주고, 녀석들의 끼니를 챙기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 시간과 움직임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녀석들은 나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청소기를 돌리면 하악질을 하는, 멀리서도 장난감 소리가 들리면 달려오는, 서로를 그루밍해 주다가도 냥펀치를 날리며 싸우는 이 모든 행동들이 모여 호냥이와 낭냥이가 되듯이.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를 챙기기도 벅찬데 어떻게 다른 생명까지 보살필 수 있을까. 나 또한 그랬기에 반려 동물을 들이는 것을 항상 주저했다. 그러나 고양이를 기르고 나서, 달라진 나 자신을 문득 발견한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은 확연히 다르다. 서로에게 무한한 애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진다. 그런 순간 덕분에 버거운 책임감을 잊는다.


    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를 때,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저 녀석들의 일생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있다. 하루하루가 소중해진다. 그런 마음으로, 두 고양이와 살아가고 있다.


어느새 남매처럼 닮아가는 호냥, 낭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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