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의 고통이 너무 아프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살고 싶은데, 자꾸 부정적인 단어가 올라온다. 며칠 만에 머리를 감는데, 수북이 빠지는 머리카락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았다. 눈물이 가슴을 적시고 마를 새 없이 나의 머릿결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집안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있다. 수술실로 들어설 때 보다 더 마음이 찢어지고 있다.
친정엄마는 내가 병원에 들어갈 때마다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머리카락으로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애써 감추고 나에게 위로하고 있다.
오늘부터라도 세상에 감사하면서 부정의 단어를 없애고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자꾸 항암치료를 받아야 되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 치료가 내 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데 나는 괜찮다만 외치면서 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항암치료를 안 받아도 괜찮은지 꼭 받아야 하는지, 12회를 잘 견딜 수 있을지 오늘만 나에게 부정의 단어들을 용서해 주자.
아침 아들 녀석을 학교에 보내고, 한 줌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EFT를 시작하고, 몸살림을 하는데 잠이 쏟아졌다. 두 시간 반이나 지났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이렇게 아침에 자면 저녁잠을 일찍 자지 못할 텐데, 걱정이 되면서도 잤다. 역시나 늦은 시간에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으니, 맞는 말이 되었다.
잠은 나에게 오래된 고민이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나는 늘 올빼미처럼 잠을 늦게 잔다. 오랜 직업에서 나온 일상의 리듬, 그런데, 아프고 나니 다들 자연의 섭리대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란다.
큰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럭저럭 남들처럼 학교는 보낸다. 그렇다고 여유있게 일어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지는 못해도 허둥지둥 30분 정도 겨우 일찍 일어나 그 전날 먹었던 밥과 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일하러 간다. 낮은 일하고 오후에 아이를 받고, 다시 저녁 준비를 하고, 아이와 놀고, 치우고, 재우고 하다 보면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나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제사, 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새벽 두 세시가 넘어서야 잠드는 생활, 그나마 이 생활은 일이 적을 때 유지했던 생활이었다.
보통 사무실 일감이 밀리면 한 달은 거의 새벽까지 일하고 , 어느 날은 밤샘 작업도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30여 년을 이렇게 살았으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온몸에 습관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 생활은 밤에 일찍 자면 손해 보는 것 같고, 허전하고, 아쉽다. 남편은 늘상 나를 게으르다고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모습을 몇 번 보지 못했고, 남편이 깨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남편은 나와 다르게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나는 왜 게으른가? 게으른 모습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던, 책을 읽던, 인터넷 검색을 하던 집에 있는 시간에도 밤을 지새운 적이 제법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찍 잔다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 나이를 먹었다.
일만 하는 내 모습이 나는 사랑인 줄 알았다. 아닌데, 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작지만 큰 나의 꿈도 있었는데 어느 날 이루어진 것 없이, 나이만 먹은 나를 보면서 나는 나를 조롱하고 야유했다. 소시민적인 삶을 거부했는데, 지금 형편없는 소시민이 되어 아무런 꿈도 야망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나를 구박했다.
어리석은 자가 되어 어느덧 나를 잃어버린 채 허상만 쫒아 허송세월하지는 않았는지,
일종에 야망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감추면서 거칠고 야만적인 삶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자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 온 삶을 꼭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가슴 출렁이는 파도가 아닌 조용히 나의 숨소리를 듣는 삶으로 전환하고 싶다.
그래서 꿈에 대한 생각을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의 열정과 꿈들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 꽤 괜찮은 꿈을 이루었음을 느낀다. 젊은 시절에 아이를 키우는 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꿈은 존재 이상의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고 싶은 일종에 변종된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행복에 겨워 자만하는 것 같다.
아직도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꿈에 미련을 갖고 있는 자신을 보곤 한다.
이렇게 소박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그래도 엄마가 꾸던 꿈들처럼,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꿈들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이 도돌이표 꿈 찾기에 아이들을 다시 재촉한다.
태양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고, 땅의 시간에 누워 잠들 수 있는 생활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