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색 초록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70년대 대중의 사랑을 받던 인기가요 가사입니다. 당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사람들이 꿈꾼 초원은 탈출구이자 낭만을 향한 동경뿐이었을까요?
숲공부를 하고서 사바나 이론(Savana Theory)을 알았습니다. 진화심리학과 환경심리학에서 인간은, 원시 인류가 살던 아프리카 사바나와 비슷한 풍경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열린 전망+안전감+식량/물 자원이 예상되는 풍경에 자석처럼 끌린다는 것이지요. 런던대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소의 실험 결과랍니다. 여러 풍경을 담은 슬라이드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서, 가장 살고 싶거나 방문하고 싶은 곳을 고르는 것입니다. 온대 낙엽수림, 침엽수림, 열대우림, 사막, 사바나 5곳 중, 어디에 가장 끌리시나요? 8~11세 아이들 집단이 가장 선호한 풍경은 사바나였고, 연령대가 높은 집단에서는 사바나 낙엽수림 침엽수림에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답니다. 인간은 사바나 환경에 대한 선천적 선호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실제 자라난 주위 환경에 선호도가 조정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넓은 초원과 적당한 나무가 있는 곳은 전망이 트이고, 숨을 곳이 있어 심리적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랍니다. 실험 참여자들이 평생 한 번도 못 가본 사바나 환경을 왜 좋아할까요?
진화심리학자들은 인류가 수백만 년 동안 생활해 온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선천적으로 끌리게끔 진화했답니다. 녹색으로 뒤덮인 초원은 물과 먹이가 있습니다. 시야가 트여 맹수나 적을 살피기에도 좋고요. 사바나 이론은, 학습이나 후천적 경험 없이도 무의식적으로 초원을 살기 좋은 안전한 환경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윈도 XP의 기본 바탕화면 사진은, 사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보았답니다. 초록 언덕의 탁 트인 시야를요. 오늘날은 현실적으로 초원을 대체하는 잔디밭이 성공과 안정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품고 있습니다. 살고 싶은 집 일 순위가 잔디밭 딸린 전원주택이라니까요.
나는 녹색을 좋아합니다. 살아있는 식물은 녹색을 띠니까. 아니 생생한 생명력을 품은 색이니까. 식물을 사랑하다 보니 녹색이 좋아졌다는 고백이 맞겠네요. 주변에서 가장 흔한 색을 꼽으라면 아마 흙색과 녹색이 아닐까요? 지구상 바이오매스를 아무리 낮춰 잡아도 80% 이상이 식물. 식물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르는 과정의 컬러가 녹색입니다. 초등학교 때 크레파스에서 녹색이 가장 빨리 닳았던 이유이죠. 2003년 '색이름 표준 규격 개정안'에서 정식 이름은 '초록'으로 통일되었습니다.
나는 ‘초록은 동색’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싱그러운 풀색과 깊은 녹색을 같은 색으로 묶어버리는 무심함이라니. 그 넓고 다채로운 초록의 스펙트럼을 단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는 것은, 표현의 한계가 자연의 생명력에 행사하는 일종의 폭력입니다. 식물의 종류에 따라,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되는지. 비 오는 날, 햇빛 쨍한 날, 바람 부는 날 파초잎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잎을 투과해 형광으로 빛나는 여린 잎, 짙푸른 음영이 만드는 무게 다른 색감은 색채 나라의 마법 같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돔을 이룬 잎사귀는 저마다 다른 표정입니다. 괭이밥의 작고 여린 하트 모양 잎새는 무릎을 꿇게 합니다. 이끼는 바짝 접근해야 자신의 신비를 내보입니다. 각각 제 모양과 제 빛깔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록이 모든 생명을 구원할 순 없습니다. 이상 시인은 수필 ‘권태’에서 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면서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한탄합니다. 시골의 요양 생활은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며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던 시기였으니 초록인들 달리 보였으리. 지적 자극과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녹색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절망을 달래주지 못했습니다.
밀집한 도심일수록 건축물에 녹지 형성을 법으로 정하지요. 시설 내부엔 소품으로 플랜테리어를 활용합니다. 도시의 이런 것들은 효율성이나 유용성 면에서 따지자면 어떤 필요와 쓸모가 있을까요?
과학적으로 녹색은 인간의 눈에 가장 편안한 색이랍니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한가운데 위치해 균형과 조화를 이뤄 시각적으로 편안하답니다. 심리적 안정감과 치유까지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요. 녹색은 내 안에 잠재된 인간 본연의 원초적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초록이 풍성한 곳에는 풍부한 물과 맑은 공기와 허기를 해결할 먹거리가 있어, 생명을 유지하기 좋은 환경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20만 년 이상 녹색 세상에 적응한 유전자가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진화적 결과라 봅니다.
생명이 시작되는 초록. 여리디 여린 새싹이 흙을 밀고 돋아나는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Green은 풀 grass, 성장 growth와 같은 어근입니다. 나뭇가지에서 겨울눈이 움트는 자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시멘트 틈새에 자라는 민들레의 꽃에서 생명 에너지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초록은 살아있는 자연의 심장박동입니다.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살아있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라.” 초록을 사랑하면서 깨우친 것입니다. 흔하게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선물이 됩니다. 숨을 쉬게 하고 먹거리를 주는 직접적인 혜택을. 그래서 녹색은 고맙기에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더욱 고맙지요.
며칠 집안에만 있으면 녹색갈증이 시작됩니다. 창밖으로 산이, 하천변이 보이지만 감전되는 거리가 아닙니다. 수풀의 향기를 맡으며 마주 보기를. 집안에 화분이 있지만 녹색 풍경에 스며들고 싶습니다. 제멋에 겨운 현장의 식물과 소통하고파서. 이렇게도 살아있다니 장하다 대견하다, 말 없는 식물과 속엣말을 주고받으며 내 삶에 활력을 얻습니다. 무늬만 도시인이라 본능에 충실한 것일까요?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쁜 것은 풀꽃만이 아닙니다. 관엽식물을 따로 기르기도 합니다. 꽃 못지않게 빛나는 잎새에 감응한다면, 행복과 더 자주 악수할 수 있겠지요. 축구장, 야구장에 천연 잔디를 깔았다고 자연이 아니듯이, 스타벅스의 녹색 세이렌 로고도 그저 상징일 뿐이지요. 초록 속을 거닐어야 진정한 접속이지 않을까요?
4월의 다양한 채도의 녹색
새 잎새의 현란한 색상
파초잎의 만화경
이나무가 만든 돔 아래서
5월의 신록이 무성해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