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배우는 공존
여린 초록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부산에서는 상록수가 많지만 칙칙한 녹색이라 느낌이 다릅니다. 그래도 갈색으로 휑한 숲에서 초록은 반갑습니다. 숲에 서면 '겨울이 되어서야 솔이 푸른 줄 안다', 속담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인간사에 접목해 보면, 어려운 때를 당해서야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뜻이지요. 푸른 솔과 짝을 이루는 송백(松柏), 잣나무도 덩달아 불려옵니다. 한 핏줄의 닮은 외모 탓에 손 잡고 다니는 연인처럼 엮여서. 잇달아 속담까지 이어집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이, 나에게도 이로운 상생과 공존의 지혜를 담은 말입니다. 이 속담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숲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천하는 천이의 법칙을 말합니다. 소나무는 숲의 천이과정에서 척박한 황무지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수종입니다. 다른 식물보다 햇빛 욕심이 많은 양수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소나무는 가벼운 씨앗에 날개를 달아 바람을 타고 개척자로 나서게 합니다.
그러나 잣나무는 후기 천이종입니다. 소나무가 개선한 토양과 안정된 환경에서, 어릴 때는 그늘에서 견디며 천천히 자랍니다. 소나무가 만든 환경에 무임승차 하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시작한 생태계를 이어받아 더 성숙한 단계로 이끕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식물학적으로 사촌,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나무로 상록수입니다. 외모가 닮았지만 성격은 다릅니다. 소나무는 전국을 누비는 선구자이고, 잣나무는 주로 고산지대의 한랭한 기후를 선호합니다. 부산 근교에서 보는 잣나무는 심은 것입니다. 아직 자생하는 잣나무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잣나무를 몰라도 잣은 모두 압니다. 잣나무의 학명은 Pinus koraiensis, 이름처럼 한국이 원산지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천연기념물급 잣나무가 없고 자생 군락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인공조림을 할 만큼 귀한 나무였기 때문에 자생과 조림의 경계가 흐려졌습니다. 중국에서 잣나무를 신라송이라 부를 만큼, 그 열매는 귀한 교역 대상이었습니다.
“아으, 잣나무 가지처럼 높아 서리 모르실 화랑이여”
찬기파랑가에서 잣나무는 화랑의 위대함과 변함없는 고결함의 상징입니다. 효성왕과 신충의 이야기에서는 약속의 증인이 됩니다. 등극하기 전 신충과 잣나무를 두고 후일을 언약했으나 즉위 후 그 약속을 잊자, 신충이 노래를 지어 붙였던 잣나무가 말랐다는 원가(怨歌)도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음에도 왜 오래된 잣나무가 드물까요? 300~500년을 살 수 있는 나무임에도 말입니다. 아름다운 목재와 귀한 씨의 가치 때문에 베어졌다고 봐야겠지요. 강원도 태백에 추정 200년 된 잣나무가 보전 가치 높은 노거수로 있답니다. 가평의 ‘잣향기푸른숲’처럼 조림지는 있습니다. 서식 조건이 까다로워 사람 가까이 서는 오래 살아남기 어려웠겠지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은 숲에 없습니다. 소나무가 무성해질수록 잣나무는 기뻐합니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잘되는 일이 정말로 나의 손해가 되는 걸까요.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경쟁자로 보지만, 숲에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이를 활용해 공존합니다. 우리는 왜 먼 사람의 성공은 축하하면서, 가까운 사람의 성공 앞에서는 마음이 좁아지는지 묻게 됩니다.
소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면 그늘을 만듭니다. 자신의 성공이 양지성 후손이 자랄 환경을 없애는 역설을 품고 있습니다. 반면 잣나무는 어릴 때 음수이기에, 부모의 그늘 아래서도 다음 세대가 자랄 수 있습니다. 한 세대가 만든 성공은 다음 세대의 기회를 막을 수도, 또 다른 기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보면 잣나무가 더 유리해 보입니다. 그런데 멀리 퍼져간 소나무는 천연기념물이 있지만 잣나무는 없습니다. 어떤 방식의 성공을 선택할 것인가, 먼저 푸를 것인가 오래 푸를 것인가. 숲이 질문합니다.
낙엽이 진 갈색 숲
어린 잣나무 묘목이 자라는 숲바닥
기리다소나무 아래서 10년 이상 자랐지만
열매를 맺으려면 또 10여 년을 더 자라야 되는 먼 길
중심 줄기 둘레를 바큇살처럼 두른 가지
목재 사용 가치를 보이는 경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