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우울증 있으면 매일 우울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계속 울고 그래?"
"정신과 다니는 거, 창피하지 않아?"
"너? 우울증이라고? 전혀 안 그래 보여."
맞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아무도 밖에서 “나 지금 우울증입니다” 하고 다니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밖에선 웃고, 대화하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기가 다 빠져서 말 그대로 ‘좀비’가 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울증을 ‘마음의 병’ 정도로만 여긴다.
그러다 보니, “그건 의지의 문제야” “나가서 햇빛 쬐고 운동하면 괜찮아질걸?”
같은 말이 너무나도 쉽게 나온다.
하지만, 나도 그거 다 안다.
햇빛을 쬐는 게 좋고, 운동을 해야 우울이 줄어든다는 것도,
집에만 있으면 더 무기력해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그 상태’를 겪어본 적이 있는가?
그 무기력과 공허함이 십 년 넘게 쌓이면,
그건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의지로 이길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나는 만성우울증에 PTSD까지 있다.
수시로 재경험이 찾아오고, 기분을 감당하지 못할 때면
내가 나를 붙잡지 못하고 수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늘 말한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 양 끝단에서 싸우는 괴리감, 그게 날 가장 지치게 만든다.
솔직히, 우울증을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밉고,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대화하는 게 좋고, 어울리는 게 좋다.
상처를 받아도, 데여도— 결국 사람 없이는 못 사는 사람. 그게 나다.
사람들은 말한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하지만 그 말엔 어딘가 오류가 있다.
혼자 왔다가,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부대끼며 살다가, 다시 혼자 가는 것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밝아 보이려 애쓴다.
그건 나를 포장하려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방식이다.
그 노력의 1%라도, 세상이 이해해준다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도 혹은 타 질환을 가진 모두가
조금은 숨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에 대한 불신이 대체로 크니까 말이야.
나는 오늘도 내가 살아냈음에, 조용히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