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파도 병원을 잘 찾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귀찮아서였을까? 돌아보면, 그보다는 “참는 게 미덕”이라
믿었던 탓이 컸다.
무엇보다 병원비가 부담스러웠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늘 커 보였다.
그래서 그저 버텼다. 약도 없이, 해열제 하나 없이.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인후염을 크게 앓았다.
밤이면 참기 힘든 고열이 덮쳤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 와중에도 학교에 나갔다. 내게는 체온계도, 적절한 판단도 없었으니까.
결국 열을 재러 간 양호실에서 39.3도라는 숫자를 보고야 조퇴를 허락받았다.
그리고 그날 밤,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때부터 내 기관지는 계절마다 울리기 시작했다.
그 며칠이 지금까지의 후유증을 남긴 셈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감기는 견디면 되고, 삐끗한 발목엔 파스를 붙이면 된다는 식이었다.
코로나 유행 시기에도 나는 운이 좋게 감염되지 않았다.
그러다 두 번 연속 감염된 이후부터 (코로나 두 번 사이에 독감도 한 번 걸렸었다.)
몸이 급격히 달라졌음을 체감했다. -남들이 아플 땐 멀쩡하고 멀쩡할 땐 아프다니..
‘브레인포그’—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그 말이 정확했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음… 어… 그게…’ 같은 말버릇이 늘었다.
한 번 바닥까지 내려앉은 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일 년에 한 번씩은 아예 쉬어야 하는 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마 그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무조건 참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하루, 이틀..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을 찾는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게는 마음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돌봄이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만이 아니라 몸을 돌보고 지키는 일이기도 해.
너의 일상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마음이 말하는 거 같았다.
이제는 알겠다. 건강을 잃으면 일상을 잃고,
일상을 잃으면 삶의 이유를 잃게 된다는 걸.
나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용기 또한 있다.
성공도, 성장도—그 과정마저 살아내며
나답게 걸어가고 싶다.
오늘의 내 마음에게,
작게 그러나 분명히 말해본다.
“괜찮아. 이제는, 아프면 병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