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는 비겁한 게 아니다. 나를 살리는 방법이지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특히 어른들, 성공한 사람들, 선생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아니, 만났는데 내가 몰라봤을 수도 있겠지.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피할 수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피하자.”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
병, 이별, 예기치 못한 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
그런데 피할 수 있는 일까지 굳이 정면으로 맞서는 건,
마치 스스로 상처를 다 받아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맞서야 할 용기를 가져야 할 때가 있고, 피하는 것이 지혜일 때가 있다.
예전에는 솔직히 피하지 않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
강한 용기, 자신감.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부럽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다치지 않고, 덜 아프게 사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게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갈등은 어디서든 생긴다.
틈이 생기고, 말이 오가고, 기분이 상한다.
토론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게 말싸움으로 번진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결국은 마음이 다친다.
나는 그 과정을 여러 번 겪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그 순간,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내 마음과 정신을 살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싸움에서 이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까지 상처 없이 버틸 수 있느냐였다.
지금도 나는 내 주변에서 갈등이 생기면 조용히 자리를 피한다.
그게 내 선택이자 방어의 방법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꿀 수 없는 싸움이나 큰 소리, 갑작스러운 폭발적인 분위기 앞에서는
몸이 먼저 얼어붙기 때문이다.
큰 소리.
날카로운 언성.
서로를 공격하는 말들.
이런 것들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쿵쿵 뛰고, 숨이 가빠진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바닥으로 꺼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맞서기보다는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피하는 방법을 택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맞설 줄도 알아야지. 세상은 도망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야.”
물론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기질이, 내 마음이, 내 성격이 그런 식의 맞섬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세상에는 모든 걸 힘으로 버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에게 맞섬은 용기가 아니라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한다.
피할 수 있을 때는 피하고,
다칠 것 같으면 침묵한다.
누군가는 회피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내가 하루라도 편히 살아가기 위해 마련한 나만의 생존방법이라는 것을.
“이게 나야.
이게 내가 세상을 하루라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야.
피할 수 있는 일에는 굳이 맞서지 않을 거야.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