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하길,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by 딥페이지

어릴 적부터 나는 유난히 타인의 시선, 표정, 말투 하나하나에 민감한 아이였다.

이사를 자주 다니며 적응할 틈 없이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졌던 나날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를 보는 법부터 배워야 했고,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살아내야’ 했다.


“항상 친절해야 해.”

“말할 때는 세 번 생각하고 말해야 해.”

“인사만 잘해도 반은 성공이야.”

인이 박히도록 들은 그 말들은, 어느새 나를 하나의 ‘태도’로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 배려라는 이름의 행동들이 사실은 무의식적인 자기 검열이었음을 알기 전까지는.

나는 늘 신경 썼다.


내 말을 듣고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말을 나에게 어떻게 되돌려줄지.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계산했고, 예측했고, 조심했다.

그런데 정작 그 타인들은 나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다소 허망했다.

몇 년 전, 내가 하는 행동들 때문에 심리적 에너지가 바닥나는 이유를 고민하던 중

“너무 힘들지 않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한테 관심 없어.”

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들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 말은 세 번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교훈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이자 안전한 삶의 방법이라 여겨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도

불편하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삼켰다.

화가 나도 ‘화내면 나쁜 사람’이 될까 두려워서, 참고 또 참았다.


심지어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말을 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이 단어는 적절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 결과, 대화에서는 늘 한 템포 늦었고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소통의 어려움이 컸다.

나는 지금도 내가 느린 걸 알고 있다.

나도 답답한데, 상대는 얼마나 더 답답했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내가 배워온 그 교육은 나를 ‘착한 아이’로 보이게 하는 데에만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실제의 나, 감정이 있는 나, 경계를 갖는 나는 그 안에 없었다.

그리고 그 교육은 여전히 나를 옭아매고 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종종 주저한다.

이건 정말 괜찮은 선택일까?

혹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리스크가 없는데도, 리스크를 예상하고 피하고 본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 걸까?

무엇이 그리 두렵고, 무엇에 마음이 휘청거리는 걸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행동들이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였다는 걸.

내가 그렇게 애써 배운 행동들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었음을.


타인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말과 행동을 조심했던 이유는

나를 조금 더 차분히, 조심히 살아가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예민하지만 그 속에서만큼은 나는 분명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건 분명, 나의 자랑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덕분이야.

너의 눈치와 조심스러움 덕에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왔고,

나를 지킬 수 있었어.

고맙고, 미안하고, 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