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하길, 생일을 축하할 힘이 생겼구나.

by 딥페이지


1995년 9월 4일, 나는 세상에 첫 빛을 보았다.

물론 그날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나에게 생일은 언제나 단순한 기념일이었을 뿐,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생일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지내서 그랬던걸까?

"오늘은 뭘 하고 싶어?"라는 질문에도, “갖고싶은 게 있어?”라는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뭘 하고싶은지도, 뭘 갖고싶은지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부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원한 건 물건이 아니라 말 한마디였기 때문일지도.

“생일 축하해.” 그 짧은 한 문장을 듣는 것이 내겐 가장 큰 선물이자 기쁨이었다.


아마도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의 힘을 알았던 것 같다. 선물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누군가의 축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축하가 내게 주어질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더 빨리 깨달았다.

내겐 축하가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몇 년 동안, 생일이 가까워오면 내 마음은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다.

태어난 것을 원망해서였는지, 아니면 살아가는 것 자체의 버거움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때마다 내 하루는 무겁고 길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일명 시간 죽이기.. 그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조차 버거웠던 거 같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생일을 앞두고도 예전처럼 우울하지 않았다. 기분의 낙폭이 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어쩌면 내가 조금은 변한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를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줄 아는 법을 배운 걸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1년 동안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빡세게 살았고 하지 않아도 될 경험들을 겪었다. 그때마다 가족을 원망했고, 나를 원망했고, 세상을 미워했다. 생일은 분노가 가장 크게 터져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왜 나는 태어났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후회가 가장 큰 독주였던 듯 하다. “나는 왜..” 라는 후회의 독주.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30대에 들어서고 나니, 나는 다시 1살이 된 듯하다.

10대와 20대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는 무엇인지. 그래서 스스로 다짐한다.

“그런 상황은 피하자. 그런 사람은 멀리하자. 나를 아끼자.”

내가 늘상 얘기하는 것. 회피는 도망이 아니라 최선의 방어라는 것. 나름 잘 지키고 있는 듯 하다.


어제는 내 31번째 생일이었다. 올해의 생일은, 무언가를 갖거나 특별한 이벤트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저 나를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된 하루로 남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이제야 내가 나다워지려는 준비를 시작한 날.

31세부터 새롭게 열리는 내 인생의 준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내게 인사를 건넨다.


“생일 축하해. 이만큼 견디고 버텨줘서 기특하다. 이젠 조금 더 배우며 살아가자. 나를, 더 사랑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