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하길, 생일은 여전히 버겁구나.

by 딥페이지

요즘은 생일을 앞두고 괜히 기분이 가라앉거나 무기력해지는 걸 “생일증후군(Birthday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의학적 용어는 아닌 거 같다. 명절증후군 같은 거려나.

나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랬다. 생일이 있는 앞뒤 한 주는 늘 다운됐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생일을 기념해야 할 특별한 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생일은 언제부턴가 버거운 날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챙겨주면 고맙지만 동시에 미안했다.

'내가 이런 축하를 받는다고? 왜?'라는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덕분에 축하받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축하의 말 한마디조차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휴대폰에 알림이 뜨고 메시지가 쌓여도, 고마움보다 무겁고 낯선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생일은 늘 밋밋하거나 씁쓸했다. 아니 그냥 보통날과 다름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가족과 외식을 해본 적도, 선물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었다. 어쩌다 복지관에서 케이크를 받아오는 날이면,

그것이 유일한 생일 선물이었다.

초를 불며 소원을 빌었지만, 그 순간조차 어색하고 쓸쓸했다. 누구도 내 바람을 묻지 않았고,

나 역시 소원다운 소원을 말할 줄 몰랐다. 그래서 생일이 다가오면 늘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대답이 먼저 나왔다.- 애석하게도 이번 주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30대가 된 지금도 생일은 여전히 모순적이다. 중요한 날이면서도, 동시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하루.

곁에 있는 사람들이 “올해는 뭐 하고 싶어?”라고 물어도, 나는 여전히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머릿속은 텅 비고, 마음은 묘하게 무거워진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트라우마는 극복해야지.” “우울은 의지로 벗어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안다.

트라우마는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 그저 함께 살아내야 하는 그림자라는 걸.

우울은 마음먹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를 갈아 끼우지 않는 이상, 늘 남아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나는 생일마다 스스로에게 작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언제쯤 내 삶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까? 제3자의 시선으로 담담히 지켜볼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다.

누구에게나 버거운 하루가 있듯, 내겐 그 하루가 생일일 뿐이다. 동정도, 연민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 시선은 오히려 나를 더 작게 만든다.

다만,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올해도,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여전히 버거워해도 괜찮다. 유유자적, 시간이 결국 나를 도와줄 테니까.”

언젠가는 반가울 내 생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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