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시작2)

외로움.

by 딥페이지

사춘기 즈음의 나는 흔히들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외로움에 치를 떠는 사람이었다.

친구도 있었고, 반쪽뿐이지만 가족도 존재했으나 그건 다른 종류의 외로움이었다.

사람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느낌. 지금도 외로움이 이따금씩 찾아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곤 한다.


어쩌면 이건 어린 시절 깊숙이 박혀버린 어떤 DNA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은 세네 살 무렵의 기억을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이 꽤나 선명하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구체적이고 또렷하다. 30 여년이 지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니, 누군가는 거짓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장면들이 진짜라는 걸.


그 어린 시절, 집에는 나를 온전히 케어해 줄 사람이 없었다. 외로움이 치고 올라오던 순간마다 할머니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를 안아주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싶지만, 나는 분명 외로웠다. 어두워지는 밤이 싫었고, 적막한 동네가 무서웠다.

불을 끄면 세상에 나 혼자 남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외롭다.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는 돌봐줄 부모가 없어서 외로웠고, 사춘기에는 길을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고, 어른이 된 지금은 그 길잡이가 되어야 할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했다는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느껴져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 외로움은 늘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 다른 감정들은 흐릿해지거나 옅어지는데, 이 감정만큼은 또렷하다.

외로움이 치고 올라올 때, 그것이 슬픔까지 데려올 때, 나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 일도 아닌 척 넘겨야 하는지.


다른 것들은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이 외로움만은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마치 오래된 집의 기둥처럼, 보이지 않게 서서 나를 붙들고 있는 감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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