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원단

4화 원단

by designwalkers

동대문 시장의 생리와 발주 시의 주의사항을 다뤘다면, 이번 화에서는 매장에서 픽업해 온 스와치라는 작은 천 조각에서 어떤 내용들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기본적인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 원단을 완벽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옷을 만들어봤을 때 비로소 "아, 이런 원단은 이런 식으로 옷이 나오는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경험치로 가는 길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스와치에 적힌 정보들을 먼저 알고 가야겠죠 기본적으로 스와치에는 원단 이름, 원단 폭(너비), 단가, 혼용률 같은 중요한 정보들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원단 거래 시 기본 단위는 '야드(YARD)'를 사용합니다. 흔히 '마'라는 단위로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히 따지면 1마는 약 90.9cm이고 1야드는 91.44cm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폭(너비)은 인치를, 길이는 야드를 함께 사용할까요? 그 이유는 원단을 짜는 직기(Looms)와 가공 기계들이 미국과 영국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기계 자체의 부품, 톱니바퀴, 바늘 간격 등이 인치 ( Inch ") 단위로 설계되었기에, 그 기계에서 나오는 결과물인 원단의 폭도 44", 54", 60"로 딱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한국 섬유 산업의 황금기 시절 큰손이었던 미국 바이어들이 '야드'로 주문을 넣으면서, 인치와 야드의 조합이 거래의 표준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원단의 폭은 생산 원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옷 한 벌당 소요되는 원단의 양을 '요척'이라 부르는데, 원단 폭에 따라 이 요척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폭이 좁을수록 더 많은 야드가 필요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폭이 좁은 원단이 야드당 가격까지 더 저렴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폭이 넓은 원단을 사용해야 생산 단가를 효율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물론 옷의 패턴에 따라 44 인치의 소폭이나 56인치 이상 대폭의 요척이 같게 나오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니 작업 전, 공장에 매번 실제 요척을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6'' X 2, 22'' X 2와 같이 표기된 다이마루 원단은 '튜브지'라는 의미입니다. 다이마루 편직 기계(Circular Knitting Machine)는 바늘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실을 뜨개질처럼 엮어 내려오면 기본적으로 거대한 양말 같은 원통형 튜브 형태로 원단이 나옵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원단들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 튜브지를 한쪽 면만 갈라 넓게 펼치는 '개폭' 작업을 거쳐 사용하게 됩니다. 다만, 봉제 공장에서는 이 개폭이라는 추가 작업이 발생하기에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단들은 '수(Count)'라는 정보가 추가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쉽게 말해 실의 굵기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면(Cotton)을 기준으로 설명드리자면, 면 1파운드(약 453g)의 무게로 840야드의 실을 뽑아낸 것을 '1수'라 부릅니다. 20수는 1파운드로 기준 길이의 20배를 뽑아낸 실을 의미합니다. 30수는 30배, 40수는 40배를 뽑아낸 것이죠. 즉, 같은 양의 솜으로 얼마만큼의 길이를 뽑아냈느냐를 나타내며, 이를 '항중식 계산법'이라고 합니다. 숫자가 낮을수록 실이 두껍고 터프하며, 숫자가 높을수록 가늘고 부드러운 고급 실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면 소재의 기본 티셔츠들이 보통 20~30수 원단으로 만들어진다면, 드레스 셔츠나 블라우스처럼 살짝 광택이 돌고 비침이 있는 상품들은 60~80수 원단이 사용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또한, 스와치에 원단의 기능을 높이거나 외관을 결정짓는 후가공 정보가 표시된 경우도 있습니다. 촉감 및 외관 개선을 위한 가공 바이오 워싱 (Bio-Washing): 효소를 사용하여 원단 표면의 잔털을 제거함으로써 촉감을 부드럽게 만들고 색감을 자연스럽게 살려줍니다.
기모 / 브러시 (Raising / Brushing): 원단 표면의 털을 인위적으로 일으켜 보온성을 높이고 포근한 감촉을 만듭니다.
실켓 가공 (Mercerizing): 면사나 면직물을 가성소다로 처리하여 실크 같은 광택을 내고 염색성을 높여주는 고급 가공법입니다.
샌드 워싱 (Sand Washing): 모래나 효소 등을 사용해 원단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내어, 오래 입은 듯한 빈티지한 질감과 부드러움을 더합니다.
와샤 (Washer/Wrinkle): 인위적으로 자연스러운 구김을 주어 내추럴한 입체감을 살려주는 가공입니다.수축률 안정을 위한 가공 텐터 (Tenter): 원단을 일정한 폭으로 고정하고 열을 가해 형태를 잡아주는 공정입니다. 원단의 비틀림을 방지하고 폭을 균일하게 유지해 줍니다.방축 가공 (Sanforizing): 원단을 미리 기계적으로 수축시켜, 세탁 후 옷이 줄어드는 현상을 최소화합니다. 덤블 워싱 (Tumble Washing): 봉제 전 원단에 열과 수분을 가해 미리 수축을 일으킴으로써, 완성된 옷의 형태 변형을 막아줍니다.색감 및 특수 효과 가공 피그먼트 다잉 (Pigment Dyeing): 원단 표면에 안료를 고착시켜, 세탁할수록 빈티지하고 은은한 색감이 올라오게 하는 염색 기법입니다.기능성 추가 가공 발수 가공 (DWR, Durable Water Repellent):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튕겨 나가게 하여 가벼운 생활 방수 기능을 더합니다. 코팅 (Coating): 원단 표면에 특수 수지를 입혀 방수, 방풍 기능 혹은 독특한 광택감을 부여합니다. 항균/소취 가공: 세균 번식을 억제하고 땀 냄새 등을 방지하여 쾌적한 착용감을 유지해 줍니다.


이처럼 스와치에는 원단의 기본 정보가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컬러감이나 두께감만으로 원단을 결정한다면, 실제 작업 시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쉽습니다. 좋은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꼼꼼함'입니다. 어쩌면 원단 정보를 확인하는 그 작은 습관이 꼼꼼한 디자이너로 거듭나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꼼꼼하게 고른 원단을 바탕으로, 어떻게 실제 옷의 설계도인 '작업지시서'를 그려내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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