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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은비 Jul 31. 2020

구원을 가장한 파멸의 잔혹 동화

[제24회 202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우물>

영화 언론사 '씨네리와인드'에 발행된 글입니다.




구원을 가장한 파멸의 잔혹 동화


- [제24회 202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 <우물>


<우물>은 잔혹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극한으로 정적인 화면에서의 우울한 정서와 끔찍하리만치 순수한 아이의 명랑한 환상이 뒤섞인다. 아픈 여동생을 시작으로 부모까지 진정 살아 있다고 보기 힘든 절망적인 가정의 남자아이 스테판이 있다. 아이는 숲속에 있는 한 우물에서의 환상을 통해 생명력을 경험한다. 망상으로나마 죽음과 가까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아이의 해맑은 몸부림은 끝내 안타까움과 참혹함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그 망상은 결국 아이의 생동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테판은 혼수상태의 여동생 헬렌과 지쳐버린 부모와 살고 있다. 아이 주변에는 생기가 없다. 오프닝 씬은 창가 밑에 죽어 있는 파리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컷 전환 하지 않은 채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여 방 안에 눈을 감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헬렌을 보여준다. 이후 등장하는 부모의 모습도 헬렌 못지않게 움직임이 없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헤드셋을 낀 채로 앉아 조금의 미동도 없다. 어머니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바로 위 선반에 머리를 박은 채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거실에는 또한 키 큰 식물들이 모두 고개를 꺾은 채로 메말라 색을 잃은 상태이다. 


집 안은 매우 고요하다. 오직 일정한 헬렌의 심전도 모니터 소리, 싱크대에서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지직거리다 꺼지는 티비 소리 등만이 미세하게 들린다.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화면에 정적인 효과를 더한다. 이러한 집 안 풍경은 저절로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스테판은 죽은 듯이 살아가는 가족 곁에서 묵묵히 생을 견뎌내고 있다. 아이에게는 소통할 존재 하나 없다.


어느 날 아이는 숲속에서 죽은 새를 발견한다. 얼마 안 가 우물을 발견한 아이는 우물에 죽은 새를 넣는다. 잠시 후 그 새가 살아나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된 아이의 경탄하는 얼굴. 이어 우물에 넣은 죽은 파리가 살아나는 것도 확인한 아이는 우물의 신비한 능력을 믿게 된다. 끝내 엔딩에서 아이는 헬렌을 우물에 넣는다. 우물의 초월적 능력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우물은 아이에게 구원의 존재이다. 가정에 활기를 불어넣고 자신과 소통할 존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망상에서 비롯한 환각일 뿐이라면 우물은 구원을 가장한 파멸로 이끄는 존재가 된다. 우물과는 무관하나 아이가 환시를 보는 장면은 분명 등장한다. 어느 날 저녁, 아이는 여동생 이를 닦아주다 뛰쳐 나간 엄마가 가만히 서 있는 뒷모습을 발견한다. 이때 아이는 엄마가 새로 변해 암흑 속에서 처절하게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날아가는 환시를 본다.



영화는 신비한 우물에 대해 아이의 환상인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규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결국 헬렌이 살아나게 됐는지 아니면 우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인지 사실을 알 수 없다. 단지 이 아이가 얼마나 가정이 회복되기를 바랐는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http://www.cine-rewind.com/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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