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암에 걸렸다.
며칠 동안이나 말을 골라도 이 말 밖에 시작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주 내내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병원에 입원해서 일주일 내내 검사를 받으셨다. 입원당시 예정되어 있던 입원 날보다 길어지고 있다는 점, 다소 묵직한 의사의 소견이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가벼운 결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는 필요 없다며 애들이나 잘 챙기라는 말씀을 두시고선 혼자 입원하셨다. 이틀을 참던 엄마는 아빠가 입원하신 병원으로 갔고 그 자리에서 담당교수에게 암진단을 선고받았다. 의사는 당사자에게도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선고했다.
"아직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모르고, 돌아오는 3일에 정확한 진단과 함께 치료 방향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대. 옆 침상에 있던 보호자가 그러는데 폐암은 수술할 수 있는 정도면 큰 행운이래. 방사선치료를 하면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 그래도 어째, 교수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아빤 의지가 강하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아."
그리고 잠시 말을 쉬었다. 괜찮아.라는 말이 우리 사이를 돌아 엄마에게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듯.
말을 무게를 달 수 있다면 "암 이래."라는 말은 중금속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는 사람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또는 본인 숱하게 들은 시나리오였다. 이다지도 무거울 것이라 가늠이나 했을까.
유년시절엔 여름이 그토록 지겹고 싫었더란다. 습기와 더위로 집안 방바닥에 발바닥이 쩍쩍거릴 때쯤, 그 무렵의 철대문이 녹슬어 귀퉁이가 벗겨지고 있을 때쯤. 엄마 아빠는 정말 온 힘을 다해 싸워댔다. 아니, 전후사정은 모르는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 에겐 그저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고 있는 걸로 보였나.
아빠는 항상 취해 있었고 엄마는 울었고 때론 고성이 오가기도 그리고 절정에 다다를 땐 유혈이 낭자하기도. 같이 앉아서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추적 60분이 제일 불편했던 그때.
나의 모든 비뚤어진 자아가 열심히 생성되던 그때.
그리고 나이가 들어 나는 유년의 나를 돌보고 부모를 용서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노력하는 중이다.
결혼을 하고도 다시 돌아왔다. 자식들을 키울 때보다 덜 부담스럽고 예뻐만 해도 되는 손녀도 둘이나 낳았다. 그리고 매주 아이들을 챙기는 4인가족을 보여드렸다. 나는 경제활동을 하고 부모님의 손을 빌렸다.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경제 주체의 허리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고 현실 가능한 세팅이라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나의 미워해 마지않는 아빠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손녀들 재롱에 허허하며 사람 좋은 인상의 연로하신 아빠를 보며 과거의 아빠와 화해하던 중이었다.
이틀을 앓아누웠다.
아빠에 관한 지나온 과거들이 밟혀서.
그 지난한 시간들을 돌고 돌아 내생에, 그의 생에 가장 찬란한 한때를 같이 한 시간이 이리도 목이 막혀.
할 수 있는 게 앓아눕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땐 증오의 대상이었으며 중년에 이르러 애틋함이 된, 이 극으로 치닫는 상반된 감정을 어떻게 몇 가지의 단어로 나열할 수 있을까.
아빠는 후련한 표정이었다.
당신이 몇 년간 여기저기 쫓아다니시며 진폐증 사고보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라도 한 듯 암진단을 받고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의 2인실에 일주일을 입원했어도 입원비가 얼마 나오지도 안 됐다는 둥, 암진단을 받으면 보상금이 얼마며 보상내역은 무엇 무엇이 있다는 둥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그보다, 이내 삶이 이제는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것 같다는 안도감이었을까.
갑자기 산신령처럼 너그럽기 그지없는 모습에서 내겐 그만큼의 슬픔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저 오래오래 계셔주시길 바랄 뿐인데, 나는 아직 모든 걸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돌고 도는 말을 정리해도 아무것도 정돈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아버지를 무어라 설명할 수 없고 지금 숨차게 느껴지는 이 감정들을 어떻게 잠재우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는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하셨다.
사실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한번 더 웃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고, 사랑한다고 더 표현하는 것.
비록 지금은 미친년처럼 시도 때도 없어 쳐 울고 돌아다녀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