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하고 잔혹한 세상과 수많은 병구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물어보면, 지난 몇 년 동안 늘 그리스 영화감독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떠올랐다. 그의 필모그래피 영화는 빼놓지 않고 찾아보고 때론 개봉을 기다리는 열혈 팬이다. 그는 올해도 영화 한 편의 개봉을 예고했다. 그런데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라니. 바로 장준환 감독이 2003년 선보인 ‘지구를 지켜라!’라는 작품이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SF스릴러 B급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잔혹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병구는 외계인을 추적하고 연구하는 청년이다. 이번 개기월식에 외계인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가 외계인이라고 믿으며 좇고 있는 남자는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이다. 대기업 오너로 도덕성과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다.
병구는 개기월식을 며칠 앞두고 강만식을 납치하는 데에 성공한다. 산 속의 거주지 지하에 그를 가둔다. 물론 고문 의자에 묶어둔 채로. 병구는 그를 본격적으로 괴롭히고 고문한다. 그를 외계인이라고 믿기 때문에 발등에 상처를 내서 파스를 바르고, 약물을 주입하거나 전기충격 등 신체적 가해를 더해간다. 강민식은 병구가 자신의 회사 산재로 인해 뇌사상태에 빠진 여성의 아들임을 기억해낸다. 사실 병구는 유제화학의 사회적 만행 피해자이자, 사회 구조적 문제와 재난으로 아버지, 어머니, 애인을 모두 잃어 상처받은 한 소시민이다. 그러나 그의 고통과 상처는 그를 잔혹한 괴물로 만들고 말았다. 외계인 추적은 모두 명분에 불과했다.
촉이 좋고 유능한 형사 한 명이 병구를 납치범으로 확신하고 산장에 찾아온다. 우연을 가장해 산장에 들어온 형사는 병구와 밤새 술을 마시며 여러가지 증거를 수집한다. 다음날 병구를 범인으로 확신하고, 산길을 내려가다가 병구를 마주한다. 병구는 근처 양봉장 문을 열어둔 채 형사의 얼굴에 꿀 한통을 부어버리고. 형사는 벌에 휩싸여 낭떠러지로 떨어지며 사망한다.
병구의 가혹행위는 점점 더 심해지고, 강만식은 자신이 진짜 외계인이며 회사 연구소에 가면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날 수 있다고 병구를 설득한다. 그들은 강만식의 연구소로 함께 출발한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채로. 강만식은 정말 외계인일까.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영화는 잔혹함 가운데서도 외계인과 지구 멸망이라는 설정으로 B급 감성의 블랙 코미디를 강조한다. 엽기적인 설정과 비참한 현실들이 어우러지면서, 희망 없는 인간 세상을 신랄하게 저격한다.
특히 병구만 보아도 그렇다. 순수 청년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악마 같은 잔혹함을 가지고 있고, 외계인 추적과 지구 지키기를 내세우고 있으나 정작 외계인의 존재나 지구의 미래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는 오직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로서 복수를 꿈꾸다 괴물이 된 인간일 뿐이다.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인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게 만든다. 그는 사회에서 인간의 비극을 경험했고, 영화는 그를 통해 결과적인 인간의 비극상을 보여준다. 사회와 인간에게 기대하거나 나아질 희망은 없다고.
관객도 끝내 외계인을 기다리게 될지 모른다. 이런 지구를 멸망시켜줄 외계인을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는 누가 지키나. 그런데 지구를 지킬 필요란 존재하는 것인가.
(리메이크 영화만이 기다려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