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젊은 시절의 상실감과 슬픔, 고통은 누구나 겪는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때문인지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고, 감정적으로 크게 공감하면서 읽게 된다. 때로는 몇 년마다 찾아서 다시 읽는 인생책이 되기도 한다. 상실의 대표적인 소설, 일본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읽은 기억이 난다.
소설은 사랑과 죽음, 상실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문장은 깊고 섬세하면서도 간결해 잘 읽힌다. 어느새 소설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한 문장, 문장은 놓칠 것 없이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어우러진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학창 시절 절친 가즈키의 죽음을 경험한다. 와타나베는 가즈키와 늘 함께였고, 종종 가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까지 셋이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즈키가 와타나베와 방과 후 당구를 치고 귀가해 집 차고에서 자살한다. 이 사건은 와타나베와 나오코에서 있어 첫 번째 큰 상실이자, 인생의 큰 상처로 남는다.
와타나베는 그때 죽음과 아픔을 인생에서 이렇게 기억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라고. 죽음이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 바로 스며들어있는 무언가라고 어린 시절부터 인식하게 된 셈이다.
절친의 죽음은 와타나베를 고독 속에 밀어 넣는다. 그는 대학에 가고, 도교 기숙사에 머물지만 친구가 거의 없고 룸메이트와 소소한 일상, 책과 음악, 술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가즈키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를 만나게 된다. 둘은 공통된 아픔 때문인지 급격히 가까워진다. 그리고 연인 관계가 된다.
하지만 나오코의 상처는 훨씬 깊었는지,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 치료를 위해 산속 요양원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종종 와타나베와 편지로 소통을 이어간다. 나오코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아 평안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나오코의 상처를 어느 정도 공감하기에 그녀를 이해하고 기다린다. 나오코가 좋아하는 노래,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함께 들으며.
나오코의 요양 기간이 길어지고, 기다리는 시간도 늘어나면서 와타나베는 학교에서 미도리와 가까워진다. 미도리는 쾌활하고 거침이 없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즉흥적인 여성이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면서 그녀의 아버지 죽음을 함께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도리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즈음, 나오코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어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채 요양원 인근에서 스스로 생을 마친다. 와타나베는 20대 초반에 또다시 절대적인 상실감을 마주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다시 한번 삶 속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은 결국 죽음을 키워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진리가 불변이라는 점도...
'바람 냄새나 햇빛 색깔이나 길섶에 핀 작은 들꽃이나 조그만 소리의 울림이 나에게 가을 소식을 전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와 죽은 자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가즈키는 열일곱 인 채로, 나오코는 스물하나 인 채로. 영원히.'
그리고 결국 산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거리에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고 있는 것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