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환자가 우울증 환자에게

1부 EP04. 박에 대하여

by 에스

박은 내게 두 번째 정신건강의학과를 추천해 준 인물이다.

박은 범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나와 같은 직장에서 얻은 질병이다.


어느 해의 봄,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사고를 모두 겪던 박은 스트레스로 인한 위장병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가는 와중에도 민원 전화를 받을 만큼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을 하던 도중 공황 증세가 갑자기 나타나서 급히 차를 세우고 버스정류장에 쓰러졌다고 한다. 정류장 의자에 쓰러진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어서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데려와달라 부탁을 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범불안장애(공황장애)'. 공황 증상이 너무 심해서 아침에 출근을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부터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아예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는 삶. 결국 그는 직장을 쉬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말을 몇 번 섞어본 적이 없었다. 같이 무언가를 해본 거라곤 직원들과 같이 했던 배드민턴과 탁구 정도. 그래서 그가 회사를 쉰다고 들었을 때에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회사를 쉬는 동안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을에 다시 돌아온 그는 뭔가를 깨달은 자처럼 어딘가가 변해 있었다. 쾌활하고 모든 일을 함께 하자던 명랑함이 사라지고 아주 차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는 왠지 그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 퇴근 후 직장 후배 한 명과 함께 저녁을 같이 먹자고 권했고, 다행히 그는 거절하지 않고 식당에 들어왔다. 우리는 어색하게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 뒤로 업무에 관한 이야기, 사적인 이야기 등을 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인 것 같다며 제법 어른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박이 처한 상황도, 앓는 병도 상관없이 그런 생각을 하는 그가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박은 내가 직장 선배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 함께 맞서 싸워 주었다. 했던 동료들 중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침묵하고 있을 때 당당하게 일어나서 부당함에 맞서 주었다. 그 후로는 누구도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박을 떠올리면 전우애가 생각난다.

박은 매우 논리파이다. 어떤 결과를 도출하려면 머릿속에서 알고리즘을 실행한 후 결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알고리즘 도출 중인 것이다.

나는 감정파이다. 모든 것은 내가 좋냐, 싫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단 행동을 저지르고 나서 후회를 한다. 굉장히 비합리적이다.

우리는 이토록 생각 회로가 정반대인데 어찌 된 일인지 꽤 대화가 잘 통했다.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반응이 오겠지'가 찰떡같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키타카가 잘 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그리고 박은 어른스럽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생각하는 폭이 매우 넓고 깊어서 배울 때가 많다. 어느 겨울날, 그의 상태가 평소보다 좋아서 우리는 함께 길가를 걷고 있었다. 달콤한 붕어빵 냄새가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요즘은 길에서 찾아보기 힘든 붕어빵. 우리는 붕어빵을 몇 개 샀다. 그는 현금을 내고는 붕어빵을 파는 어르신에게 거스름돈은 그냥 가지시라고 했다. 별 거 아닌 행동이지만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행동이었고, 나는 그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우울과 불안을 공감해 주고, 자신이 다니는 병원을 추천해 준 사람. 내가 '죽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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