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만 힘든 게 아니에요"

1부 EP02. 첫 번째 정신과

by 에스

맨 처음 정신과에 갔던 기억은 직도 또렷하다.


나는 직장에서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했다가 소위 말하는 '다구리'를 당했다. 부모뻘 되는 선배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단체로 달려들어 물어뜯으니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친했던 동료들 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상황을 침묵으로 묵인했고, 나는 무참히 짓밟혔다.

그날이 지난 후 그들과 대화는커녕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도 너무나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불안하고 두려우니 잠이 안 왔고, 불면증과 함께 출근 공포도 점점 심해졌다. 증세가 심해지자 문득 병원이 떠올랐다.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갈 때마다 지나치던 번화가 사거리 3층에 걸려 있던 '정신과' 간판. 나 역시 아무래도 정신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 정신이 아픈 사람, 정신병자들이 다니는 병원. 너무 무서운 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죽음을 수없이 꿈꿔 왔지만 이런 걸 치료해 주는 병원에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었더랬다. 다니는 걸 들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다. 사가 편견을 가지면 어떡하지. 왕따라도 또 당하면 어떡하지.

속 고민하다가 보니 점점 더 증세가 심해졌고, 결국 약의 힘을 빌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도 앱을 켜서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검색해 보았다. 우리 동네에 정신과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그때 보았던 그 병원-번화가 사거리 3층의 그 병원-이 그나마 집에서 까운 곳이라 가보로 했다.


평일 어느 날, 반차를 쓰고 병원을 방문했다. 나 혼자일 거란 생각과는 달리 병원에는 대기 중인 환자가 두 명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청년도 있고, 아주머니도 있었다. 잠시 앉아서 대기하다가 내 이름이 불리자 긴장되는 마음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예상보다 더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어릴 것 같은 연령대. 그는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에 온 이유, 증상, 가족관계 등,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직장에서 겪는 인간관계도 힘들고, 어릴 때부터 겪던 우울함이 점점 심해진 것 같아요. 항상 죽고 싶어요.리고 불우한 어린 시절 블라블라~~'

나는 의사가 물어보는 대로 나의 어두운 면과 가난하고 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가정사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긴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의사가 처음으로 내게 해 준 말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환자분. 환자분만 그렇게 힘든 게 아니에요. 다들 힘들답니다.'


기가 찼다. 군말 없이 그가 하는 말들을 한 귀로 흘려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다시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

모두가 힘들다.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 어렵게 마음을 먹고 병원에 왔다고 생각했을까?

나도 알고 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른 사람들도 힘들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지금 힘든 이 꾀병은 아니잖는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이만큼의 시련에도 주저앉는 그런 사람인 거다. 그건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다. 없으니까 병원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찾아간 거고 말이다. 그런데 너만 힘든 게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수치스러웠고, 도망가고 싶고, 원망스러웠다. 적어도 그 말을 우리 엄마가 했다면 나는 받아들였을 거다. 생판 모르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그렇게 한 번 마음의 상처를 받고 나니 정신과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병원에 가기가 더더욱 무서워졌다. 또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나약하고 한심해 보여. 그런데 정말 잠을 잘 수가 없어. 그 사람들을 보는 게,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너무 두려워.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아.

나는 결국 대안으로 신경과를 찾아갔다. 주 증상을 불면증이라고 말하고, 거기에 우울함을 약간 얹듯이 말했다.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편안한 미소를 품고 있었고 공감과 위로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게 '너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었고, 증상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약들을 처방해 주겠노라고 말씀해 주셨다.

수면장애를 개선시켜 주는 몇 개의 약을 처방받았다. 자기 전에 긴장을 완화시켜서 잠을 잘 들게 하는 약과, 잠든 동안 수면을 유지시켜 주는 멜라토닌 등이다. 결과적으로 잠은 그럭저럭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나는 죽고 싶어질 때면 약을 먹고 꿈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 마디 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한 입 크게 물어뜯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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