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

1부 EP01. 우울증, 그것

by 에스

그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소리 없이 다가왔다.


처음 그것은 '사라지고 싶다'는 기분으로 시작되었다.


그건 초등학교 4학년 때로, 나 몸이 편찮으신 아빠의 요양 때문에 시골 외딴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내가 배정된 학급은 불운하게도 소위 '엄석대'가 존재하고 있었고, 남자 담임은-그 시절, 모든 교사들이 그런 건 아닐 테지만-모든 걸 방임, 방치하는 인물이었다. 수업을 제대로 가르친 적도 없어서 수업에 대해 기억나는 거라곤 그가 엄청나게 거대한 상어를 잡는 일화 정도였다.

아이들은 전학 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움츠러든 나를 쿡쿡 찔러보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 내내 책만 읽었는데, 덕분에 독서량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 불행 중 단 하나의 위안이다.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거나, 화장실에 갔을 때 문 위로 물을 퍼붓기도 했다.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채 화장실 안에 웅크린 채 그저 아무도 없는 척하며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교실에서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한 명도 없었다.

그때는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고 싶었다. 이사 온 집은 복도형 아파트 10층이었는데, 하루는 엄마와 동생과 외출을 나서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긴 복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복도에 창문도 달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뛰어내릴 수 있는 구조였더랬다. 나는 다리 한쪽을 난간에 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혼냈고, 나는 스르륵 다리를 내렸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날 혼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지금까지도 궁금한 채로 남아 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담임이 시키지 않아도 일기를 썼다. 일기만이 나의 대화 창구였기 때문이다. 나는 힘든 마음 상태를 가감 없이 일기에 쓰고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다. 원래 있던 학교가 너무 그리웠다. 학교에 있던 친구들도 너무나 그리웠다. 그중 1년 넘게 좋아했던 남자애에게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편지를 보냈다. 그쪽 어머니의 중재로 우리는 전화 통화를 한 번 했다. 답장은 딱 한 번 왔다. 나는 그걸 보물처럼 언제까지나 보관했다.


다음 해, 나는 5학년이 되었고 엄석대와는 갈라지게 되었다. 엄마같이 푸근한 아줌마 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학급 운영부터 아이들 헤아림까지 너무나 따뜻한 분이었다. 다시 친구들이 생겼고, 선생님은 나를 신임했으며, 교실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되었다. 인생은 비극 아니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우울함이란 존재는 그렇게 내 인생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살 한 살 나이를 먹었고, 살아가는 동안 그것은 중간중간 오랜 친구처럼 찾아왔다.


두 번째는 가난이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위자료를 주지 않는 아빠 때문에 우리 집은 급격히 기울었다. 박에 사기에 바람까지, 삼박자가 완벽한 인물이었다. 운전면허조차 없었던 엄마는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했고,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들쭉날쭉했다. 동생은 게임중독자가 되었고 나는 학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가장 부러웠던 기억은 수능 때이다. 수능 기간이 되자 아이들은 너도 나도 가방에서 홍삼 한 포를 꺼내 마셨다. 우리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넣어 주었을 홍삼 한 포. 그게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춘기에서 벗어나 고등학교 2학년쯤 되어서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아주 먼 대학교에 합격해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도. 국 나는 시외버스로 네 시간이 걸리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엘 들어갔고, 그렇게 집을 떠나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는 실연이다. 나는 대학교 때 사귄 첫 남자 친구와 거의 8년 가까이 사귀다가 헤어졌다. 상대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을 만큼 나를 사랑해 주었는데, 나는 오히려 결혼이 하기 싫어서 헤어지자고 했다. 무래도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목격해서일까, 결혼이란 건 내게 너무나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사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결혼은 내게 가까이 다가왔고 나는 미칠 듯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결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결국 이별 선언을 했고, 8년간의 연애를 내 손으로 끝내버린 나는 엄청난 상실감과 슬픔 속에서 나날들을 보냈다.

다음 남자 친구는 3년 정도 사귀었다. 신기하게 누굴 만나도 연애는 길고 평화롭게 이어졌다. 그러나 마지막은 항상 결혼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또 결혼이 하기 싫어서 헤어졌다. 그래도 지금은 현실과 많이 타협해서, '결혼은 하되 딩크족을 만나자!'라고 외치고 있다.


각각의 우울함은 그 원인이 사라지거나 잠시 소강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아니, 숨어버렸다.

지금의 나는 서른 살이 넘었고, 직장에서 일한 지도 10년째가 되었다. 어른이 되었고, 가족의 풍파도 어느 정도 지나갔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지금은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이유가 없는데도 우울하다. 가만히 있어도 목이 졸릴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하다. 매 순간 숨을 쉬듯이 우울을 마시고 있다. 매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울증인 것이다.


<우울증의 증상>

-눈물이 이유 없이 흐른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공기처럼 둘러싸여 있다.

-편한 자살 방법을 찾아본다.

-수면제를 모아 본다. 그래 봤자 수면유도제이지만.

-모은 수면제를 먹기 좋게 빻아서 술에 타 먹을 생각을 한다.

-유서와 재산정리 방법을 생각하고 써 놓는다.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쓸데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밥 먹고 양치하고 씻는 모든 생활이 귀찮고 지겹다.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부럽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엄두를 못 낸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쓸모가 없다.

-나는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인 것 같다.

-정말 너무나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