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02

불러주다

by 에스

02


대학교 1학년의 나와 그사람.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생전 처음 하는 대학생활이란 건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야자가 없다는 건 좋았지만, 그럼에도 저녁까지 수업이 꽉 차 있었는 데다가, 어떤 수업은 무려 연속 3시간짜리도 있어서 나를 경악하게 했다.

좋아하는 과목과 좋아하지 않는 과목이 있고, 그것들을 똑같이 열심히 들어야 한다는 것도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그 모든 과목의 교수님들은 거의 매주 과제를 내준다는 것과, 가장 좋은 성적이 100점이 아니라 A+라는 것, 조별 과제가 너무나 많다는 것 등.

대학생활이라는 건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한가롭지 않았다. 공강 때 잔디밭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 따윈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다들 죽은 동태눈깔로 조모임을 하러 떠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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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린이날을 몇 주 앞두고 학교에서 어린이날 축제에 대해 안내가 내려왔다.

우리 과는 축제를 보러 온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는 것을 맡게 되었다.

인형극 주제는 전통으로 가자며 흥부놀부전으로 정해졌고(물론 선배들이 정한다), 우리 1학년들은 거의 노예처럼 대거 투입되었다.

원작과는 달리 이상한 등장인물이 많아져서 '제발 이것만은 피하고 싶다..!'가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캐스팅의 근거는 제비 뽑기였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제비 뽑기나 운에 대해서는 업보가 깊은 나였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이상한 역할을 맡고 말았다.

더 슬픈 것은, 나와 같이 다니는 기숙사 패밀리 두 명은 운 좋게도 인물 연기를 뽑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대 보조 스태프 정도랄까. 그들은 키득거리는 걸 숨기지도 않으며 나에게 그저 힘내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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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연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진이 빠지는 기분을 간신히 참으며 강당에 가야 했고, 당시만 해도 무시무시해서 얼굴도 못 쳐다보던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불운의 제비 뽑기를 하고 만 동갑내기 친구들 역시 싫은 티를 애써 감추며 연기 지도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연습하는 것을 보러 왔다.

그 또한 제비 뽑기의 수혜자로, 인형극에 관여하지 않는 생활을 즐기다가 심심했는지 우리의 연습장에 나타난 것이다.


”오, 인형 잘 만들었는데? 저거 제비인형이야?(큰 웃음) 누가 만들었어?“

“형 갑자기 뭔 일이래요? 데이트하는 거 아니었어?”

“여자친구 있었으면 안 왔지~“


그는 한창 즐겨 쓰던 캡모자를 쓰고 와서는 강당 의자에 앉아 우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친한 동생들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며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이 연습을 지켜보았다.

아마 우리 동기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라는 책임감이 컸을 것이다.

단지 그뿐. 연극을 도와줄 생각도, 참여할 생각도 없이 그저 노닥거리다가 시들해지면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나타나면 연습장의 분위기는 훨씬 따뜻해졌다.


“아이고 흥부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이런 날 밖에서 자면 얼어죽어요~~(어쩐지 흥부는 악인이 되어 있었다)“

“야, 진짜 목소리 잘 낸다. 목소리가 세상 찌질한데? 성우해도 되겠다.”


그는 내가 맡은 인형 중 가장 징징대는 목소리를 내야 했을 때 낄낄대고 웃었고, 아마도, 그때 그 사람은 내 존재를 인식했을 것이다.

쉬지 않고 다른 동생들을 놀리며 웃고, 까불고 하는 와중에 문득,


“ㅇㅇ아, 여기 좀 봐봐.”


내 이름을 불러 주던 그때.



아마도, 인형극 연습은 그때부터 조금 즐거워졌던 것 같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8일 오전 01_16_5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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