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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un 04. 2021

나는 미키가 싫어요!!

미국 와서 더 싫어졌어요

와이프는 어린 시절부터 월트 디즈니의 팬이다. 몇 년 전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에 가서 퍼레이드를 보면서 감격에 눈물 흘리기도 했고, Disney+의 연간 구독권을 구매하여 심심할 때마다 같은 애니메이션을 몇 번이고 보며 웃는다. 디즈니와 거리를 두고 자라났던 나는 연애 시절부터 와이프의 이런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함께 관련 상품을 쇼핑하며 내 지갑이 털리는 일이 잦아지자 자연스레 디즈니에 대한 떨떠름한 감정이 쌓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키 마우스가 나에겐 최종 보스 격이었는데, 딱히 그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만 미키는 디즈니의 일인자이기도 하거니와 캐릭터가 쥐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원래는 귀여운 미키 마우스 사진을 한 장쯤 올릴 타이밍이지만 디즈니가 워낙 저작권에 민감하니 생략하겠다). 


미국에서 생활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에서 살다 보면 가끔씩 집 안으로 숨어 들어온 쥐와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농담이 아니다. Washington D.C. 나 New York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밤만 되면 주먹보다 큰 크기의 거대한 쥐 (이런 것들을 Rat이라고 한다)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늦가을이 지나 날씨가 추워지면 조그마한 쥐들이 벽 틈새나 구멍을 타고 온기를 찾아 집 안으로 숨어드는 경우가 흔히 있다. 가정집에 출몰하는 작은 쥐들은 mouse라고 부르는데, 연필 크기의 구멍만 있어도 충분히 드나들 수 있으며 워낙 날쌔기에 때려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쥐가 사람을 공격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쥐가 집안에 있다는걸 인식하게 되면 자그마한 소리에도 굉장히 민감해지고 쉬어야 하는 시간에도 마음을 푹 놓을수 없기에 삶의 질이 굉장히 저하된다. 이 집에 사는 지난 2년간 겨울마다 꼭 한 번씩은 쥐가 들어와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끈끈이, 덫, 쥐약 등 다양한 도구를 집안 구석구석에 설치한 후 불안한 밤을 보냈다. 잠자려고 누우려는 찰나에 뭔가 조그만 것이 방구석을 휙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날 밤 잠은 다 잔거다.



며칠 전 주말에 마루에서 느긋이 누워서 폰을 보고 있는데 뭔가 거뭇한 것이 스윽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여름인데 설마' 하는 생각에 억지로 의심을 지웠다. 하지만 이후로도 며칠간 집구석에서 수상한 소음과 기척이 들려왔고, 결국 집주인에게 이야기하여 pest control (방역업체) 업자를 불렀다. 전문가답게 금새 의심 가는 구멍들과 쥐가 다닌 흔적들을 지적하고 다양한 트랩들과 쥐약을 설치하고 갔는데, 그럼에도 어제 안방에 들어온 쥐 한 마리를 쫓아내느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한바탕 소란을 부려야 했다. 걸리라는 쥐덫에는 안 걸리고 왜 안방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쥐덫에 피넛버터를 더 발랐어야 했나?


이런식으로 쥐에 트라우마가 생긴 상황이기에 미국에 사는 동안 미키와 사이가 좋아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와이프 Apple Watch 화면의 미키를 볼 때마다 흠칫거리는 증상은 언제쯤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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