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했던 미국 리그 더블헤더의 기억
여행과 독립기념일 주간 때문에 2~3주간 야구를 놓고 푹 쉬었다. 최근 타격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기에 잘 되었다 싶어 아예 야구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야 놀러 가서 비행기도 타고 물놀이도 하니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차 야구에 대한 갈증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 일요일은 미국 야구팀 Golden Island의 더블헤더 (야구 두 게임을 연달아 하는 것)가 있는 날이었다. 경기당 7이닝씩 총 14이닝.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땡볕을 맞으며 뛸 생각을 하니 야구를 한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뭔가 걱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지지난 경기에서 심판이 탈수증으로 경기 중반에 실려나갔다던데...
첫 게임의 상대 투수는 약 80마일 초중반 (약 120km 후반 ~ 130km 중반)의 공을 던지는 좌완투수였다. 약간 낮은 팔 각도에서 공이 나왔기에 좌타자의 경우 마치 등 뒤에서 공이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터라 대부분 타이밍을 맞추기 상당히 어려워했다. 나 같은 우타자도 공의 궤적이 보통 투수와 달라서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아니, 사실 내 실력으로는 공이 120km가 넘어가면 간신히 커트하는 것이 고작이지 타구를 앞으로 치는 것도 쉽지 않다.
양 팀 선발이 모두 좋았기에 타자들을 손쉽게 제압해 나갔고, 5회까지 2:2로 팽팽한 투수전을 이어갔다. 6회 말, 우리 팀 선두 타자가 2루타를 치고 나갔고 다음 타자는 삼진으로 아웃. 다음 타자로 나선 나는 2볼 1스트라이크에서 높은 직구를 후려쳐서 중견수 넘기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올 시즌 미국 리그에서 친 첫 장타! 결국 그때 만든 점수가 결승점이 되었다. 3:2 승리.
20분간 쉬고 맞이한 두 번째 게임. 상대 투수는 190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장신이었다. 그가 몸을 풀 때만 해도 우리 팀의 분위기는 여유만만이었다. 이미 한게임을 이겨 놓은 상태인 데다 투수의 공 던지는 폼이 영 어설펐기 때문이다. 상체와 팔로만 공을 밀어 던지는 듯한 투구폼에 '얼마 못 던지고 내려가겠네' 싶었고, 1회에 세 타자 모두 삼진을 당했지만 다들 '별거 아냐. 칠만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닝이 넘어가며 그의 공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저건 80마일 후반 (130km 후반~140km 초반)은 되겠다', '아냐 90마일 (145km) 된다' 등의 소리가 더그아웃 동료들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기 중반부터 위력적인 슬라이더와 커브까지 섞으니 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지난 경기에서 장타도 하나 쳤겠다 기세 등등해진 나는 '별거 있나, 이번에도 하나 치자'는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갔지만, 직구는 간신히 커트하는 것이 고작이고 카운트가 몰린 상태에서 좋은 커브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니 얼어붙은 채로 삼진만 두 차례. 우리 팀 투수도 나쁘지 않았고 여러 차례 호수비도 나왔지만 결국 이 게임은 1:2로 지고 말았다.
프로도 아닌데 두 게임에서 양 팀이 낸 점수가 총 10점이 나지 않는다니? 보통 한국 사회인 야구에서 2시간짜리 게임을 하면 양 팀 합쳐 20~30점이 나는 것도 예사이기에 이런 타이트한 투수전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무더운 날씨에 두 게임을 4시간도 되지 않아 끝낼 수 있었다. 외야를 훌쩍 넘기는 장타를 쳐서 기분은 좋았지만, 내 주제에 90마일을 던지는 투수를 얕보았다는 부끄러움도 들면서 살짝 복잡해진 마음 상태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