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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Aug 13. 2021

90마일 투수를 얕보았던 이야기 (2)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9이닝 24삼진

8월 1일, 집에서 15분가량 떨어진 Nike Park 야구장에서 Beavers 팀을 상대로 플레이오프 경기를 했다. 전날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 데다 시합 당일도 비가 조금씩 흩뿌려서 사실 게임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라운드가 약간 축축할 뿐 전혀 운동에 지장이 없었다. 배수 시설이 잘 되어서일까?


Beavers는 몇 주 전에도 상대했던 팀이다 (90마일 투수를 얕보았던 이야기 (1)). 투수들도 좋고 기동력도 있는 상대라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임은 우리 팀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다. 게임 전에 몸을 풀고 있는 것은 지난번에 두 번째 투수로 올라왔던 키 크고 마른 흑인 투수. 90마일을 던지는 선수인 건 알지만 지난번에 우리 팀이 아예 못 쳤던 것도 아니고, 투구 폼이 구종에 따라 조금 다르다는 것을 파악했기에 이번에는 좀 더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회에 세 타자가 전부 삼진을 당하고 들어왔다. 역시 80마일 중반을 넘어서면 팀의 강타자들조차 쉽게 공을 맞추지 못한다. 그러다가 카운트가 몰리면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날아오는데, 벤치에서 봐도 눈이 궤적을 따라가는 게 버거울 정도였다. 타석에서 직구를 기다리다가 저런 게 들어오면 어떻게 방망이를 내지 않고 참을 수 있을까?


2회도 3회도 세 타자 모두 삼진.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삼진 퍼레이드는 4회 2 아웃에서 나온 빗맞은 2루 땅볼로 간신히 끊을 수 있었지만 (첫 11 타자 연속 삼진. 메이저리그 기록이 첫 9 타자 연속 삼진인데...) 그 이후에도 상대 투수는 대부분의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강력한 직구, 날카로운 슬라이더, 좋은 타자들을 상대로 간혹 보여주는 체인지업까지... 제구가 약간 불안했던 지난 경기와는 달리 이번 경기에선 대부분의 투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형성되었고, 이러다 보니 타자들은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상대 투수가 강할 때는 배트를 짧게 잡고 커트라도 많이 해서 어떻게든 투구 수를 늘려서 마운드에서 빨리 끌어내리는 것이 정석인데, 헛스윙 - 파울 - 헛스윙 혹은 루킹 스트라이크 - 헛스윙 - 헛스윙 식으로 대부분의 타자들이 3-4구 안에 삼진으로 끝나 버리니... 나도 한 차례 타석에 들어갔는데, 직구만 짧게 치려고 하는 것을 포수가 눈치챘는지 직구-슬라이더-슬라이더에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먹었다. 마지막 직구에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가 다 나오기도 전에 이미 공은 배트를 지나 포수 미트로 향하고 있었다. 헛스윙 삼진. 이런 식으로 당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다.







우리 Golden Island 팀 에이스인 Kenta도 굉장한 호투를 보여주었고, 간혹 안타나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하긴 했지만 6회까지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막아냈다. 하지만 점차 체력이 떨어졌는지 7회 2점, 8회 1점을 허용했고, 결국 그 점수가 3:2 패배의 결승점이 되었다. 9회 초 상대 실책과 행운이 겹쳐 만들어진 무사 만루의 기회에서 삼진-땅볼-삼진으로 고작 한점 밖에 뽑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야구는 총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으면 되는 경기다. 상대 투수는 9이닝을 혼자 던지며 총 24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 나머지 3개의 아웃카운트도 약하게 맞은 땅볼들로, 제대로 맞은 타구 자체가 안타 두어 개 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 팀을 완벽히 압도한 것이다. 2010년부터 약 10년 넘게 다양한 레벨의 야구 경기를 해 봤지만 이 정도로 한 팀을 압도한 투수는 처음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Golden Island팀과 함께한 2021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플레이오프가 한 게임으로 끝나서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한 시즌을 부상 없이 완주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즌이었다. 내년엔 올해보다는 잘 쳐야 할 텐데... 3할은 바라지도 않고 2할 5푼만 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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