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미국 신용카드의 세계
2017년 여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은행으로 달려가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었다. 2년간의 유학 생활 동안 한국으로부터 돈을 송금받아야 하니 핸드폰 개설과 더불어 우선순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 Checking Account (이자가 없는 일반 예금 계좌)를 개설하는데 은행원이 "너 신용카드 한번 신청해 볼래?"라고 권유해 왔다. 거래 기록이 없는 이민자이기에 될 리가 없다 생각했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기에 흔쾌히 "그래 주면 고맙지"라고 답했고, 그는 몇 분간 컴퓨터에 이런저런 정보를 집어넣더니 "You are approved"라며 축하를 건넸다. 그때는 알았을까? 그 순간 내가 이 달달하고 복잡한 게임 속에 첫 발을 들이밀었다는 것을...
한국에서 대학 생활과 직장 생활을 하며 10년 넘게 신용카드를 사용해 왔지만 사용한 카드 개수는 10개를 넘지 않는다. 1년에 하나도 채 열지 않은 셈이다. 연회비 비싼 카드는 철저히 피했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그냥 사용액의 1% 정도를 적립해주는 카드 한 두 개만 사용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신용카드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항공, 호텔, 캐시백 등 선호에 따라 다양한 카드를 열 수 있고, 적게는 $100~200부터 많게는 $1,000이 넘는 가입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놀라움을 넘어 한국의 짠돌이 카드 회사들에 대한 분노가 올라올 지경이었다. 연회비 $100 언저리에 괜찮은 호텔에서 2~3박을 묵거나 한국 왕복 이코노미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다면 누가 이를 마다할까? 심지어 Thanksgiving, 크리스마스 등 쇼핑 시즌이 다가오면 Chase, American Express, Citi, Capital One 등 메이저 카드 회사에서는 경쟁적으로 보너스 규모를 늘려 프로모션을 진행하기에 부부가 카드만 잘 열어도 (i.e. 호텔 카드 한 장 + 항공 카드 한 장) 즐거운 연말 휴가를 거의 돈 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본격적으로 카드 게임을 시작한 건 약 3년 전부터인데,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항공이나 호텔을 내 돈 내고 예매한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만약 여행이 귀찮다면? 잔뜩 쇼핑을 한 뒤 보너스로 받은 카드 포인트로 이를 갚아버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 신용카드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며, 보너스 및 다양한 혜택을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기존 고객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소비자가 누리는 혜택들은 모두 카드 회사가 부담하는 마케팅 비용인 것이다. 미국에도 한국 못지않게 혜택에 집중하는 소위 체리피커들이 많으며, 마일모아 (https://www.milemoa.com/), TPG (https://thepointsguy.com/), 너드월렛 (https://www.nerdwallet.com/)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신용카드 정보 및 포인트 사용 방법에 대해 분석한다.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카드 회사들이 지속적으로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에 와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카드 빚을 지고 있다는 점에 놀라곤 했다.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은 물론 중장년 층에서도 크든 작든 카드빚을 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는 미국 사람들이 매달 고정적으로 빚을 갚는 것을 (monthly payment)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많은 경우 대학 시절부터 학비나 생활비를 자기가 충당하는데, 한국처럼 마이너스 통장 등 낮은 금리에 돈을 빌릴 방법이 없기에 자연스레 편리한 신용카드를 통해 연 이율 10% 후반에서 20% 후반에 달하는 이자를 매달 내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잡고 나서도 다달이 월세 (혹은 주택 대출금),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대출 이자 등이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기에 어지간히 좋은 직장을 잡지 않고서야 신용카드 빚에 작별을 고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니 카드 회사가 인당 몇백 불의 마케팅 비용을 쓴다 하더라도 고객 하나만 잘 잡는다면 전혀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다.
매달 사용 금액을 전액 갚을 수만 있다면 신용카드 개설을 통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우리 가족은 카드를 꽤나 공격적으로 열고 있다. 아래 몇 가지만 주의한다면 별문제 없이 신용카드 게임을 즐기면서 좀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카드의 잦은 개설 및 해지는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평소에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주택 및 차량 구매 1~2년 전에는 몸을 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체는 소액이라도 반드시 피해야 한다. 카드가 많을 경우 특히 주의해야 하는데, 고작 몇 달러 혹은 몇 센트의 적은 금액을 깜빡하고 갚지 않았다가 신용등급이 대폭 하락하거나 심지어 추심업체 (collection agency)의 독촉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공부는 필수다. 같은 규모의 카드 포인트로 아마존에서 몇백 불 쇼핑을 즐길 수도 있고 나처럼 항공사 마일리지로 전환해서 일본행 일등석을 끊을 수도 있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왕 내 손에 들어온 보너스를 더 잘 쓰고 싶다면 시간을 좀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