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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Oct 20. 2021

9살에 배운 자전거 브레이크

태민이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이 작년 3월이니 (영상: 성공!! 자전거 타기) 벌써 1년 반 이상이 흘렀다. 이 정도 됐으면 보조바퀴를 떼는 건 물론이고 자전거를 다리 사이에 끼고 날아다닐 법도 한데 태민이의 자전거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만고만하다. 자전거를 사고 몇 달 간은 정말 열심히 태웠지만 버지니아의 습한 더위와 벌레떼를 겪은 작년 여름부터 차츰 자전거를 몰고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팬데믹 초반 자전거 열풍이 불 때 남은 재고를 집어온 탓일까? 자전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해서 아이가 위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워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평지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아도 좌우로 경사가 있는 길에서는 보조바퀴가 있어도 중심을 잃을 정도였으니... 언제부턴가 자전거는 집 문 앞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말, 이 동네로 파견 나온 전 직장 선배가 우리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맛있는 저녁과 친절한 형수님, 착하고 살가운 두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저녁시간이었다. 모임을 파하고 집을 나설 때, 형님이 문득 "아, 전에 말했던 자전거 가져가라"라며 집 뒤에서 작은 딸이 타던 자전거를 몰고 왔다. 아이가 아끼는 자전거인데 이제 작아져서 도저히 탈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비싸게 주고 산거라는 말마따나 자전거의 외관은 꽤나 고급스러웠고, 아이도 정든 자전거를 떠나보내기가 서운한지 입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안색은 시무룩했다. 


기울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너는 합격이다





새 자전거가 생긴 바로 다음날 시승에 나섰다. 태민이가 잘 타는 사진을 보내주면 전 주인의 서운한 마음도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였지만 태민이는 이내 슥슥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기울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보기 좋던지. 이전 자전거는 태민이에게 약간 작은 감이 없지 않았는데 새 자전거는 한 사이즈 이상 컸기에 힘을 쓰기도 훨씬 수월해 보였다. 


느닷없이 '한국 나이로 9살이 되었으니 이제 브레이크 잡는 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폐가 없는 아이들이야 훨씬 어린 나이부터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타겠지만, 자폐가 있는 태민이는 몸 쓰는 것을 상당히 느리게 배우는 편이다. 여태까지는 그저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가고, 핸들을 틀어서 좌우로 방향을 바꾸는 정도만 할 수 있었지만, 이제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게 브레이크고, 속도를 줄이려면 양손을 꽉 쥐면 돼" 말하면서 브레이크 위에 놓인 아이의 손을 꽉 쥐었다. 같은 설명을 몇 번 반복하면서도 사실 '얘가 이 설명을 이해하긴 할까, 최소한 며칠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그날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의 속도가 약간씩 줄어드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그때의 코 끝 찡한 그 감격이라니. 다음 날에도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낼 때마다 "브레이크!"라고 외치면 천천히 자전거의 속도가 줄어들곤 했다. 물론 아직 몸의 컨트롤이 완벽하진 않기에 손으로 브레이크를 꽉 움켜쥐면서 발은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지만 - 그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지만, 이런 순간을 볼 때마다 잠시나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부디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열심히 배워서 조만간 보조바퀴도 떼어 보자 태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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